[특집]
태권 브이와 거대 로봇의 세계
2005-09-29
글 : 한청남

복원을 끝마친 <로보트 태권 브이>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과 함께 거대 로봇에 관한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새겨 본 이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경우 <태권 브이 수중특공대> <슈퍼 태권 브이> <84 태권 브이>를 거쳐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까지 로봇들이 등장하는 일련의 김청기 감독 작품들을 열광하면서 보았던 추억이 있다. 물론 <혹성 로봇 썬더 A>나 <스페이스 간담 브이> <불사조 로봇 피닉스킹> 같은 다른 국산 로봇 애니메이션들도 빠짐없이 극장에서 봤으며, 여의치 않을 경우 명절날 TV 앞에서 방영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표절의혹에 벗어나기 힘든 과거의 국산 만화영화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가고 <태권 브이>만이 홀로 원래의 모습을 찾아 돌아온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허나 그때의 로봇 만화영화들에 대한 기억만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권 브이>의 귀환과 함께 지금 당장 DVD로 만나 볼 수 있는 거대 로봇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실을 반영하듯 대부분 일본산 로봇들인 것은 아쉽지만 <태권 브이>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감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태권 브이와 마징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놓고 단짝친구와 싸웠던 것처럼….

로보트 태권 브이 박스세트

영등위 창고에서 우연히 <태권 브이> 필름이 발견되기 이전에도 <태권 브이>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은 상당했다. 비트윈에서 지난 2003년 우여곡절 끝에 내놓은 <로보트 태권 브이 박스세트>가 그 결실로서, 단순히 화질과 음질로 평가할 수 없는 <태권 브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노고가 담긴 타이틀이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필름 소스가 없어서 겨우 겨우 긁어모은 필름 조각과 베타 비디오 테이프 등을 엮어 만들었기 때문에 애초에 제대로 된 화질을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복원판 이전에 영상매체로서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편차가 심한 화면과 스크래치로 인해 비가 주르륵 내리는 듯한 조악한 화질에도 불구하고 발매 당시 어린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픈 이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

후속작 <슈퍼 태권 브이>와 <84 태권 브이>도 함께 포함되었는데, 1편보다는 확실히 나은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록으로는 김청기 감독의 인터뷰와 음성해설, 그리고 볼타라는 이름으로 바뀐 미국판 <태권 브이>가 담겨있다. (비트윈 출시)

자이언트 로보 리마스터판

<바벨 2세> <삼국지>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원작을 바탕으로 근 7년에 걸쳐 제작된 역작. 무공해 에너지원 시즈마 드라이브를 둘러싼 국제경찰기구와 BF단의 치열한 대립,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소년 다이사쿠와 자이언트 로보의 활약을 그린 7부작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다.

<기동무투전 G 건담>의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을 필두로 일본의 정예 스탭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으로서 중량감 넘치는 자이언트 로보의 박력 있는 액션과 무협영화를 방불케 하는 초인들의 화려한 대결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특히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클래식풍의 웅장한 BGM은 이 작품이 단순한 로봇 애니메이션 이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마니아들을 주 대상으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발매 당시 일반 성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 이유는 386세대에게 어필하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캐릭터들이 총 출연하기 때문. <수호지> <삼국지>의 인물들은 물론 ‘요술공주 샐리’, ‘바벨 2세’ 등이 깜짝 출연하고 있다. 처음에 발매되었던 박스세트보다는 음질과 부록이 한층 보강된 리마스터판을 추천한다. (노바미디어 출시)

신세기 에반게리온 리뉴얼

세기말적인 어두운 내용,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내면을 파헤친 탁월한 심리묘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수께끼와 음모. 20세기 최대의 화제작이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몇 마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작품이다. 소수의 컬트팬을 위한 난해한 작품으로 만들어졌지만 일대 붐으로 일약 대중성을 획득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신지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타는 에반게리온은 언뜻 로봇처럼 보이나 실은 거대한 생체조직 위에 철갑을 둘러씌운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 ‘AT 필드’와 예수를 찔렀다던 ‘롱기누스의 창’ 등 비밀스러운 기능과 장비들 또한 수수께끼를 부채질한다. 악마 같은 외형 탓에 완구 관계자는 악당 로봇인 줄 착각했을 정도. 어쨌든 <기동전사 건담>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인기작인 만큼 DVD 역시 두 차례에 걸쳐 출시되었는데, 지난해 기존판의 화질을 대폭 보강하고 5.1채널로 음향을 리믹스한 ‘리뉴얼판’이 발매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아직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챙겨볼 것. 단 성인들을 위한 작품이므로 아이들에게는 보여주지 말 것. (뉴타입DVD 출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1, 2, 3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각본가 이토 카즈노리 등 유수의 스탭들이 만든 <패트레이버> 시리즈. 여기서 등장하는 ‘패트레이버’는 가까운 미래 산업용 로봇 ‘레이버’가 일으키는 사건, 사고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용으로 만들어진 로봇을 뜻한다.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현실에 기반을 둔 사실적인 내용과 패트레이버를 운용하는 경시청 특차2과 멤버들의 일상이 디테일하게 그려지는 것이 특징.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 격인 노아가 로봇 애니메이션의 열성팬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패트레이버를 마징가 같은 슈퍼 로봇처럼 조종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TV 시리즈와 OVA 시리즈에 이어 제작된 세 편의 극장판은 하나 같이 실사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영상과 진지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원인불명의 레이버 폭주나 자위대의 쿠데타 같은 내용들이 마치 현실에서 벌어질법한 이야기처럼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1편과 2편의 경우 <공각기동대> 이전에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얼마 전 국내 발매된 3편은 ‘폐기물 13호’라는 부제로 이전 시리즈와는 다른 미스터리 호러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3편에서 오리지널 주인공들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어 아쉬움을 남기지만 최근작인 만큼 제작진들의 인터뷰 등 부가영상들이 풍부한 것이 장점이다. (1, 2편 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3편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출시)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리마스터판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든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데뷔작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전설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니아 창작집단 가이낙스의 첫 OVA로서 수많은 패러디들로 가득한데, 제목인 ‘톱을 노려라!’부터 테니스 소재의 만화영화 <에이스를 노려라!>에서 가져왔다.

처음에는 로봇 파일럿을 꿈꾸는 여고생들의 발랄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인류의 생존을 건 장대한 싸움으로 이어지는 파격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때문에 처음 에피소드만 보고 가벼운 작품이라 속단하지 말 것. 마지막 엔딩이 주는 감동은 재패니메이션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슈퍼 로봇 건버스터는 처음 3화까지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4화의 막바지부터 활약하기 시작한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지만 그 진가를 제대로 드러내는 5화에서는 수억의 우주괴수들을 상대로 막강한 위용을 과시하면서 로봇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린다. 눈물과 감동, 피 끓는 열혈 등 거대 로봇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작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발매되었는데, 기존판의 거친 화질을 깨끗하게 업그레이드한 ‘리마스터판’을 봐야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본편의 패러디들 못지않게 재치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등 부가영상들도 꽤 볼만하다. (노바 미디어 출시)

기동전사 건담 W / 건담 SEED

<기동전사 건담>하면 애니메이션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1979년 첫 시리즈가 일본에서 방영된 이래 지금껏 수십 종에 달하는 시리즈가 나왔으며 수백 가지에 이르는 관련 프라모델들까지 나오는 등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동전사 건담>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한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건담을 비롯한 모빌슈츠들이 무적의 로봇이 아니라 단순한 전쟁의 도구, 즉 병기로서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설정의 참신함과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인간 드라마로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킨 뜻 깊은 작품이다.

관련 시리즈들 중 국내에 DVD로 발매된 것은 <기동전사 건담 W>와 <기동전사 건담 SEED>. ‘원조 건담’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던 작품들이나 나름의 볼거리와 장점을 지니고 있다. <건담 W>는 꽃미남 소년들이 대거 등장하는 독특한 캐릭터성 때문에, <건담 SEED>는 로봇에 관심 없던 여성팬들까지 확보할 정도로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작품으로서 재패니메이션의 최신 트랜드라 할 수 있다.

<건담 W> DVD는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를 활용한 호화 패키지가, <건담 SEED>는 소개책자와 트럼프 카드 등 부속물들이 포함되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뉴타입DVD 출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리뉴얼

<기동전사 건담>과 함께 ‘리얼 로봇’ 붐을 일으킨 작품. 여기서 등장하는 발키리는 인간형태의 로봇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만 평상시에는 실제 전투기인 F-14 톰캣의 행태를 지녀, 로봇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로봇으로 변하는 이유도 인간보다 훨씬 큰 거인족 외계인들과의 백병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로봇은 거대 전함 마크로스다. 주포를 쏘기 위해 부득이하게 변신을 한 것이 거대한 로봇 형태가 되고 마는데, 길이만 1km가 훨씬 넘기 때문에 아마도 역대 로봇들 가운데 가장 큰 축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로봇들간의 싸움보다도 마크로스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 그 가운데서도 사랑이다. 이는 싸움만 일삼는 외계종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평화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된다. <마크로스>라는 작품이 명작으로 남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참신한 내용 덕분. 물론 극 중 아이돌 가수이자 현실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민메이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기동전사 건담>처럼 여러 시리즈가 나왔지만 국내에 발매된 것은 첫 번째 TV 시리즈. 역시 향상된 화질의 ‘리뉴얼판’을 추천한다. (매니아 엔터테인먼트 출시)

트랜스포머 극장판

<에어리어 88 지옥의 외인부대>와 함께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명절날 방영되어 당시 아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전설의 애니메이션. 1986년 작품으로 수작업으로 그러한 퀄리티를 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한 영상을 자랑하는데, 한국의 넬슨 신 감독이 만든 극장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국내에 알려진 사실이다.

트럭이나 자동차 등 온갖 운송수단들이 인간형태로 변신하고 또한 각자 인공지능을 가지고 인간처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들의 특징. 선과 악의 로봇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초박력의 거대 로봇 유니크론이 변신하는 장면은 로봇 만화영화 팬들로서는 감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게다가 그 성우는 명배우이자 명감독 오슨 웰즈!). 원작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지만 미국인 제작진들에 의해 개작되었기 때문에 다른 로봇 만화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DVD는 리마스터링된 화질과 5.1채널 음향으로 10월 출시 예정에 있다. (다우리 엔터테인먼트 출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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