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 월요일 오후 부산에서 만난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피곤해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처음 시도하는 아시안필름아카데미(AFA)의 교장직 때문인가 싶었는데, 대만에서 미처 못 끝내고 온 일에 대한 고민과 홍콩에서 다른 일정을 치르고 온 여독 탓이란다. 허우샤오시엔은 아무리 우스운 질문을 받아도 친절한 선생님처럼 대답해주는 감독이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개막작 <쓰리 타임즈>와 AFA에 대한 질문 끝에 영화만들기와 기억에 관한 생뚱맞은 궁금증을 기자가 표하자, 그는 황당해하면서도 "당신과 나 사이에 세대차가 있어서 관점의 차이도 생겼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보듬었다.
-칸영화제 상영본이 120분인데, 부산영화제 상영본은 135분이다. 러닝타임을 늘리기로 결정한 이유는.
=촬영을 올 1월에 시작해서 3월말~4월초 사이에 끝냈다. 이 영화에 투자한 프랑스 영화사가 칸영화제 출품을 원했고, 기한까지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영화를 완성해야했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 공개 전에 재편집을 하게 됐다.
-세 개의 시간, 세 개의 사랑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과정을 들려달라.
=<쓰리 타임즈>는 2001년도 PPP프로젝트다. 그 당시에는 영화촬영 경험이 없는 두 감독과 나, 이렇게 셋이 에피소드 하나씩을 맡기로 돼 있었다. 각자 자기가 속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고, 그렇다면 나는 1947년생이므로 청년 시절의 대만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 자금 문제들로 다른 두 감독이 연출을 포기하게 됐다. 결국 나 혼자 찍게 됐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내 식대로 변형해 현재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됐다.
-에피소드마다 스타일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같은 형식을 완성하기 위해 고민한 부분도 달랐을 것이다.
=1966년의 이야기는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지금 대만에는 그 당시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경을 보여주기보다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다. 1911년의 이야기는 하나의 장소에서 촬영한 것인데, 세트가 아니라 직접 찾아낸 옛날식 가옥이다. 처음으로 무성영화 방식도 시도했다. 자막으로 등장하는 글씨는 서예를 공부한 내 친구가 직접 써준 것이고, 음악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뮤지션이 작곡해준 것이다. 2005년의 이야기에서는 장소를 찾는 어려움은 없었지만 애써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초점을 두지 않았다. 얼마나 리얼리티를 중시하느냐가 내가 그 시대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중국어 원제가 <최호적시광>(最好的時光)이다. 이 원제는 어떻게 붙여졌나.
=작가로 일하는 내 친구가 지어준 제목이다. <펑꾸이에서 온 소년> <연연풍진> <동동의 여름방학> 등도 그가 제목을 지어줬다. 내가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 과정을 함께 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내 영화를 잘 안다. '최호적시광’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시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제목은 영화의 배경이 된 그 시간들이 정말 아름답다는 의미라기보다, 어떤 시간이든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의미다.
-당신의 전작 <밀레니엄 맘보>는 많은 사람들이 서기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쓰리 타임즈>에서는 그 새로움이 한층 성숙하게 드러난다. 감독으로서 그녀가 가진 특별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 그것을 언제 처음 발견하게 되었는가.
=<밀레니엄 맘보>에서 서기의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충격이 됐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 영화를 찍기 전까지 그에 대해 잘 몰랐다. 그가 찍은 영화도 본 적이 없다. 광고만 몇 편 봤는데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고 그 인상이 좋아서 함께 영화를 찍게 됐다.
-장첸을 캐스팅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장첸의 영화들은 많이 봐서 그가 어떤 배우인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서기를 먼저 캐스팅해놓고 누가 서기와 가장 잘 어울릴지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그 때 장첸이 영화 한 편을 끝낸 상태였다. 그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30~40년대여서 <쓰리 타임즈>의 첫번째 에피소드에 몰입하기도 어렵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AFA 교장직을 맡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어떤 과정을 통해 나한테 연락이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시아의 영화인 지망생들이 모인다는 얘기 정도만 들었고, 연락이 와서 수락하게 됐다. 교장직을 맡았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AFA로 인해 생긴 일정들 때문에 피곤하지는 않은지.
=딱히 그것 때문에 피곤하지는 않다. 다만 아이들한테 뭔가 가르친다는 일 자체가 어렵다. 다른 두 감독(논지 니미부트르, 박기용)은 학생들과 함께 단편영화 제작을 하면서 실질적인 것들을 가르치지만 나는 이론을 가르친다. 이론만으로, 학생들에게 창작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