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만나러가자, 이만희의 쿨한 세계 (+영문)
2005-10-06
글 : 조영정 (한국 영화사 연구가)
만나러 가자, So Cool Man!
이만희 감독의 촬영 모습

10월4일 오후 8시33분. 억장이 무너지다.
억장이 무너지기 23분 전, <씨네 21> 담당기자의 원고 독촉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보다 일주일전, <씨네 21> 부산국제영화제 데일리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일주일을 “화려한 오프닝 라인”을 상상하며 보냈다. 그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 곳은 지하철과 퀵서비스 차량이었다. 회고전에서 보다 좋은 상태의 화면을 선보이기 위해, 그리고 후에 이만희 감독의 영화가 해외에 소개될 때 보다 유리하고 용이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영문프린트를 새로 만들고 있었고, 현상소와 자막작업실을 계속 왔다갔다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왜, 프린트를 이렇게 늦게 만드냐고 탓하지 마시라. 오래된 네가필름을 현상하는 곳은 우리나라에 단 한군데 뿐이고, 이 필름들을 다루는 것은 여간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 아니다.) 흔들리는 차량에서 필름 통들을 끌어안고 들었던 생각들을 지하철에서 다시 뜯어 고치며,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드디어 사람들이 이만희 영화를 만난다”라는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필”을 받기 위해 회고전 영화들의 예매율을 확인한 순간, 바로 10월4일 오후 8시33분, 낮은 예매율과 낡은 네가필름 통들이 오버랩되며 억장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이만희 감독이 영화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것이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예술”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예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와 배짱밖에 없는 “범상치 않은” 보통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못된 세상을 고개 꼿꼿이 들고 살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관념적인 예술영화보다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장르영화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영화는 어느 예술영화보다 철학적이고, 어느 작가영화보다 깊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진수를 경험할 기회를 외면하고 있다면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이 글이 읽힐 즈음이면, 아마 영화제가 막 시작할 것이다. 자, 모두 이만희를 만나러 가자. 왜? 그의 영화는 한국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가장 화끈한 영화이며, 가장 쿨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회고전을 맡고 있는 자로서, 이만희 회고전의 제목을 무슨 광고처럼 “So Coooooool!”이라고 짓고 싶은 유혹을 느낀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영화 <원점>

이만희의 영화가 얼마나 쿨한지 예를 들어보자. <쇠사슬을 끊어라>의 도입부이다. 쇠사슬에 묶인 청부업자가 철수라는 또 다른 청부업자에게 쇠사슬을 끊어달라 부탁한다. 철수가 “나는 신의가 있는 악인”이라며 도와줄 테니 자기를 도와달라고 한다. 청부업자가 다가온 철수를 때려눕히고는 한마디 던진다. “이건 악인의 상식이야. 신의 있는 악인? 개나발통이다.” 이런 대사를 할 수 있는, 이렇게 확고히 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은 한국영화사에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 낯뜨거운 대사를 들어보자. <04:00-1950>에서 막 한국전쟁이 터진 지점이다. 소대장이 외친다. “적과 조국의 안전은 우리 가슴두께 뿐이다.” 이 애국적인 대사가 가슴을 치는 이유는 최전방 초소의 군인들이 꼼짝없이 죽어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명씩 한 명씩 젊은 군인들이 쓰러지고, 감독 이만희가 영화 속에 등장해 주인공인 박중사(이만희 영화에서 가장 쿨한 장동휘가 연기한)에게 “죽지 마라”고 말한다. 박중사는 “안 죽는다. 억울해서 못 죽는다.”라고 대답한다. 죽음의 상황을 악착같이 설정해놓고, 이만희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죽지 말라고 도망치라고 말한다. 멜로로 가보자. <원점>의 여주인공은 몸을 파는 여자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떠날 것을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떠나지만 말라고 부탁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돈을 내놓으며 “너를 산다”라고 말한다. 사랑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가장 절실한 사랑의 표현은 사는 것이다. 이만희의 영화는 이렇게 허를 찌르는, 이따금은 너무나 신파적인 대사를 툭툭 던진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그것이 너무도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되어 미처 눈치를 챌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의 쿨한 세계는 그래서 직접 경험이 필요하다. 제발 보자!

영화 <1950년 04시>

그럼 여기서 퀵차량에서 생각했던 오프닝으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그 시작은 이랬다. “서울 종로의 한 타로카페를 찾았던 날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이었다. <만추>를 찾기 위해, 프린트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보안경비 삼엄한 미국 나성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용하기로 소문난 '아키텍트 김'을 만나 내가 과연 <만추>를 찾을 수 있을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아키텍트 김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나의 별자리가 그리 나쁘지 않아 그에 버금가는 다른 영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건 절대 거짓이 아니다. 와이드 앵글의 홍효숙 프로그래머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8월 초, <휴일>을 찾았다. (내가 찾은 것은 아니다. 영상자료원의 창고에 너무 잘 보관되어 있었을 뿐이다) 1968년 제작되어 세상 빛을 보지 못했던 <휴일>의 발견은 진정 <만추>의 발견에 비견될 만한 성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만추> 찾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그 영화는 언제고 부산에서 상영될 것이다. (아, 이 오만함을 탓하지 마시길.)

이만희 감독의 독사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만희 감독이 손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사진이 유일한 정면 독사진이다. (담당인 L기자님이 부탁한 사진을 실어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난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을 테니…)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한 쪽 눈은 매섭고, 외로워 보이지만 슬쩍 미소를 담은 그의 입술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어쩌면 이만희 감독은 예매율 때문에 안절부절 하는 나를 비웃을는지 모른다. 상관없다. 나는 단 한번도 그처럼 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So Cool Man!

The reason why Man-hee Lee loved film so much was because film is an art that can be shared with everyone no matter what their social status is, nor the level of education. That is why he chose unusual, common people who were lacking social privileges as characters in his films and insisted on living through the tough reality without despair. So it is natural for him to choose more common genre films to be shared with everyone rather than ideological art films. Even so, his films are more philosophical than any other art films and profound than any other auteur films. Therefore, it will be heartbreaking to miss such an authentic experience. By the time this article is out, the festival will have just kicked-off. Now, let’s get prepared to appreciate Man-hee Lee films. Why? No doubt that his film is one of the coolest Korean films of all.

Now, let’s talk about how cool his film is. In the introduction of Break the Chain!, an assassin who is chained asks another hired killer, Chul-soo, to break the chain. Chul-soo makes a deal with the man saying “I’m a faithful villain” and breaks the chain. Right away, the man knocks Chul-soo down and says “Nonsense. A faithful villain? Screw it!!” It is hard to find such a complete evil characterization in the Korean cinema history. In 04:00-1950, a captain in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shouts, “Fate of the enemy and the safety of our country is all upon us.” This patriotic line is touching because everyone knows that the soldiers at the front line will all get killed. One by one, the soldiers are down, and the director Man-hee Lee appears on the screen telling Sergeant Park, the protagonist, not to die. “I will not die! I can’t die like this!” answers Sergeant Park. After creating such a deathly scene, all of a sudden, the director tells him to escape death.

How about his melodramas? The female protagonist in The Starting Point is a prostitute. She is afraid of her lover leaving and getting killed. She begs her lover to stay even without love. The man gives her some money and says, “I’ll buy you.” In this situation, the best to show love when love cannot be completed is letting the lover live. Such lines in Man-hee Lee’s films are delivered in such a sophisticated way that they are hardly noticeable. That’s why we need a first-hand experience of his cool world.

To find Full Autumn, I have decided to visit the Sates, even though it is known for tight security, in the hopes of finding somebody with the print. The “Architect Kim”, a famous at fortune- teller at Taro cafe, predicted that I won’t be able to find the print but will soon get a substitute. Beginning of August, I found Holiday(it was saved at the Korean Film Archives), and it is a wonderful substitute for the Full Autumn, for it was produced in 1968 and was never on theater. However, that doesn’t mean that we gave up the serach for Full Autumn. If the print is somewhere out there, it will definitely be screened someday at P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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