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몇개로 뚝딱뚝딱 세워놓은 수영만 부산국제영화제 사무실. 야전병원을 방불케하는 그곳에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연신 어디론가 뛰어다느라 제대로 인사를 받을 시간도 없다. 저녁이 되어서야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린 김 프로그래머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1996년을 돌아보며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36살이었던 그해, 결혼을 하고, 첫 차를 사고, 아이를 만들었다. 과거를 돌아보면 감회가 싶다. 인생의 황금기를 영화제와 보낸 셈이고,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었고, 또 여전히 이루고 있으니까 말이다.”
올해 `아시아 영화의 창'부문에는 각 나라의 변화를 대변하는 영화들이 다양하게 초청되었다. 김 프로그래머는 북경올림픽의 그늘과 트랜스젠더 문제(<탕탕>, <아름다운 남자>)라는 두 가지 화두를 짊어진 중국영화들과, 특이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태국, 대만의 영화들에 주목하고 있다. “태국은 복잡미묘하다. 산업적인 거품이 빠지다가도 한 편의 성공작으로 역전을 한다. 작가영화도 마찬가지다. <시티즌 독>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대만은 극영화는 계속 죽어가는데 <점프 보이즈>같은 다큐멘터리의 흥행성적은 뛰어나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는 금기된 이슈를 다루는 두 편의 이란 다큐멘터리(<오프비트> <백 보컬>)와 싱가폴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생각하는 <나와 함께 있어줘> 또한 많은 한국 관객들과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외에도 김 프로그래머가 올해 각별한 공을 들인 부문은 특별전인 `아시아 작가영화의 새 지도 그리기'. “과거의 작품들 중에서 발굴하는 작업이 그간 미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 특별전은 새롭게 아시아 작가영화를 돌아보기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리즈를 10년 정도로 지속한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김 프로그래머는 마지막으로 ‘능력있는 감독들의 차기작을 지원하는 1단계’와 ‘PPP를 통해서 노하우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2단계’를 거친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음 단계를 들려주었다. 내년으로 예상하고 있는 필름마켓의 출범이 시작되면, 미래의 아시아 감독을 길러내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단계가 실현될 것이다. 이미 김 프로그래머의 머릿속에는 10주년을 넘어선 부산국제영화제의 청사진이 그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