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빨간 날은 일단 좋은 거라는 보편타당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은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다들 느끼셨다시피 말이다.
일단, 날씨가 대단히 추석스럽지 못했다. 하필이면 벌초를 간 날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뽑은 지 3일밖에 안 된 번쩍번쩍 새 차가 도랑에 빠져버림으로써 생애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석이 되고 말았다는 한 어르신의 증언이 전하듯 최악의 날씨를 기록한 89년의 추석 이래 16년 만에 폭우가 내린 이번 추석은, 게다가 날씨까지 후덥지근해 불쾌지수로는 근래 최고를 기록한 추석이었다. 상당히 뜬금없는 얘기긴 하다만, 이번 비로 피해 입으신 분들, 아무쪼록 힘내십시오.
또 하나, 빨간 날의 수가 너무 약소했다. 3일이 뭐냐 3일이. 물론 몇몇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겠으나, 어쨌든 이번 3일짜리 추석은, 사람 바글바글한 영화제 가서 하루에 네편씩 일주일 내내 영화를 보는 것과 맞먹는 피로누적을 가져왔던 바, 이에 필자는 일요일 낀 휴일과 샌드위치 휴일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시급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바이다. 왜 이런 촉구를 여기서 하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다만, 여튼.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건 극히 일부에서만 느꼈을, 아니 어쩌면 전국에서 필자 혼자서만 문제라고 느꼈을 문제였을지도 모르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 추석 연휴에는 성룡 형님의 영화를 단 한편도 구경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극장에서는 물론이고, 공중파TV, 케이블TV에서마저 성룡 형님의 영화가 완전 씨가 말라버린 이 상황. 그렇다. 이는 노랑 추리닝 없는 이소룡에, 선글라스 없는 터미네이터, 수염없는 간달프에다가, 검정 바가지 없는 다스베이더에 필적하는 상황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안다. 필자 역시 명절 기간 성룡 무비 반복 중탕에 따른 당분 저하 문제의 심각성을 오랫동안 느껴왔고, 이러한 중탕을 일삼는 방송 사업자들에 대해선 껌 한통 10년간 씹기, 같은 노래 30회 이상 연속 부르기 등의 중징계에 처해야 마땅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용형호제>나 <폴리스 스토리> 같은 극단적 중탕만 아니라면, 명절에는 역시나 성룡 형님의 영화가 한편쯤은 있어줘야 제맛인 것 또한 확실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나 똑같이 좋아하진 않아도, 누구나 한편쯤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게 또 성룡 무비 아니겠는가.
필자 역시 소싯적 추석 연휴에 ‘성룡 무비 전문’ 동아극장에서 봤던 <미라클>을 살면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또, 어느 해 설날 간신히 표를 구해서 본 <홍번구>가 준 시끌시끌한 즐거움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모르긴 해도 이런 추억, 아마 다들 하나쯤은 가지고 계시리라.
한데, 이런 잘 묵은 추억으로부터 한순간에 고개를 돌려버리고 ‘한물간 유행’ 쓰레기통에 분리수거해버리는 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야박한 처사다.
성룡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