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흔들리는 구름> 차이밍량의 즐거운 배반
2005-10-07
글 : 유운성 (영화평론가)

감독 차이밍량/ 대만, 중국, 프랑스 2005년/ 114분/ 아시아영화의 창

<흔들리는 구름>에서 차이밍량은 이번에도 어느새 즐거운 배반을 경험하게 한다. 우스꽝스러운 포르노 촬영현장의 적나라한 묘사는 웃음과 서글픔, 그리고 당혹감이 뒤엉킨다. 불현듯 영화곳곳에 끼어들곤 하는 뮤지컬 장면은 현실과 등을 맞대고 있는 환상의 강력함을, 거꾸로 그러한 환상과 결코 닮을 수 없는 현실의 지평을 상기시킨다.

차이밍량에게 도시는 낯선 이물감과 공포를 안겨주는 동시에 미궁의 매혹을 간직하고 있는 이상한 장소이다. 눅눅하고 습한 대만의 기후를 고스란히 닮은 차이밍량의 세계에서 도시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습지이다. 또한 그의 영화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강생은 그 습지 이곳저곳을 쉼 없이 헤매고 다니는 수줍은 야생동물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차이밍량의 신작 <흔들리는 구름>은 그의 습지에 예고없이 찾아온 지독한 건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여기서 그는 <구멍>에 이어 다시 한 번 뮤지컬 양식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갑작스런 극심한 가뭄 탓에 물보다 수박이 더 싼 값에 팔려나가는 타이페이, 포르노배우로 일하는 샤오강은 어느날 예전에 알았던 시앙치이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샤오강이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시앙치이는 은밀하게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지만 샤오강은 선뜻 그녀에게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둘의 등장은 <흔들리는 구름>을 무엇보다 <거긴 지금 몇 시니?>와 관련된 영화로 혹은 그 ‘이후’의 이야기로 보이게 만든다. 그들이 서로를 향한 다가섬과 물러섬을 어설프게 반복하는 모습과 포르노 촬영현장의 교성이 익숙하게 느껴질 때쯤이면 예외없이 차이밍량 영화를 특징지었던 “코믹 멜랑콜리”(켄트 존스)가 서서히 화면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익숙한 공간들과 사물들이 낯설고 엉뚱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건 차이밍량의 영화에서라면 당연지사. 우리의 고정관념은 어느새 즐거운 배반을 경험하게 된다.

수박과즙과 생수병에 담긴 오수로 넘쳐나는 우스꽝스러운 포르노 촬영현장의 적나라한 묘사는 보는 이를 웃음과 서글픔, 그리고 당혹감이 뒤엉킨 기묘한 감정상태로 몰고 간다. 불현듯 영화곳곳에 끼어들곤 하는 뮤지컬 장면은 현실과 등을 맞대고 있는 환상의 강력함을 입증하는 한편 거꾸로 그러한 환상과 결코 닮은 것일 수 없는 현실의 지평을 상기시킨다.

결국 <흔들리는 구름>은 몽상과 현실이 서서히 서로를 껴안으면서 마침내 완전한 융합에 이르게 되는 통상적인 뮤지컬 장르의 관습에 기대기보다는 그러한 융합의 불가능성에 관해 말하고 있는 영화가 된다. 내밀한 감정들을 점진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가운데 어느새 결말에 이르면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어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곤 하는 차이밍량 특유의 점층법은 여기서도 여전하지만, 그것이 <하류>에서처럼 임팩트와 설득력을 동시에 갖춘 것은 아니란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걸작 <안녕 용문객잔>을 통해 자신만의 미니멀리즘을 극단까지 밀어붙여본 차이밍량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영화세계를 중간결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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