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배트맨 비긴즈> 진지한 블록버스터, 충실한 DVD
2005-10-07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제목 그대로,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의 탄생 기원을 파고든 영화다. 범죄에 의해 부모를 잃은 주인공 브루스 웨인이 악을 처단하기 위한 전사 배트맨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지만, <배트맨 비긴즈>는 단순히 정의를 위한 영웅 만들기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다.

<메멘토> <인썸니아> 등의 전작을 통해 주제를 다루는 진지하고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외부의 악을 쳐부수는 것이 아닌, 인간 내면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임을 역설한다. 박쥐로 인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부모의 죽음으로 삶의 방향성을 잃은 브루스 웨인이 오랜 수행과 단련을 통해 이를 이겨내는 과정은 영화에 치밀한 사실성을 부여하며, 이러한 사실성은 만화가 원작으로서 수십 년 동안 우스꽝스러운 스판덱스 히어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배트맨을 다시금 탄생 초반의 어둡고 복잡한 성격의 캐릭터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1989년 팀 버튼의 영화판을 통해 한 번 성취되었던 바이긴 하나, 배트맨의 이중성과 소외당한 캐릭터를 그리는 데 천착한 버튼과는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미 문화적 아이콘으로 인정받은 배트맨에 대한 참신한 해석을 내렸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별된다. 무엇보다도 <배트맨 비긴즈>가 90년대 시리즈의 프리퀄이 아닌, 21세기의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의 첫 편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너무나 기본적이면서도 많은 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감독의 진중한 접근에 어울리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도 이 영화를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아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크리스찬 베일이 브루스 웨인의 변모 과정을 성실히 그려냈으며, 웨인의 집사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 배트맨의 유일한 동료인 고든 경찰국장 역의 게리 올드먼, 웨인의 수행을 도운 스승이자 숙적 앙리 듀카드 / 라즈 알 굴을 연기한 리암 니슨 등 노련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났으며, 출연 분량은 적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조나단 크레인 박사 / 허수아비 역의 킬리언 머피도 언급해 둘 만하다.

극장의 감동과 박력을 그대로 옮겨

DVD로 만나는 <배트맨 비긴즈>는 작품의 화제성과 함께 출시 전부터 팬들의 큰 관심을 모아왔는데, 두 장의 디스크에 본편과 부록을 나누어 담았다. 국내판의 경우 초도 2,500장에 한해 원작 만화책이 증정된다.

2.4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영상은 전체적으로 최신작다운 고른 질을 보여준다. 영상의 예리함은 약간 떨어지지만 충분히 선명한 화질이며, 깊이 있는 컬러와 함께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영화의 비주얼로서는 손색이 없다. 어두운 장면이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윤곽이나 질감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으며, 박쥐 떼가 등장하는 장면과 같이 정보량이 많은 화면도 깨짐 없이 잘 소화해 낸다.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는 극장에서의 느낌을 집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적절한 채널 분리와 중후한 저음 표현은 액션 장면의 박력을 한층 배가시켜주며, 효과음과 대사의 전달도 또렷하다. 웨인이 박쥐 동굴로 들어가 박쥐 떼들에 둘러싸이는 장면(챕터 13)과 배트맨이 박쥐 떼들을 이용하여 레이첼을 구출하는 장면(챕터 27)은 감상 공간을 완전히 둘러싸는 날갯짓 소리가 대단히 인상적이며, 배트모빌 텀블러의 추격 시퀀스(챕터 28)는 저음으로 더욱 강조된 텀블러의 엔진 소리와 차량과 기물이 파손되는 격렬한 효과음이 조화를 이루어 카 체이스 액션 장면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액션이 강조된 장면은 아니지만, 챕터 5의 검술 훈련 장면에서는 드문드문 들리는 빙판 갈라지는 소리가 의외로 장면의 긴박감을 더해준다.

부록 면에서는 감독과 배우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 제작 과정을 충실하게 담은 여러 편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통해 블록버스터 만들기의 이모저모를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메뉴 구성이 눈에 띄는데, 영화의 주요 장면을 미국 코믹스 특유의 컬러풀한 만화 페이지 형식으로 만들어 페이지를 넘기면서 부록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부록으로의 접근이 만화 페이지의 그림이나 고유명사 등을 찾아 클릭해야 하는 방식인데, 만화 원작 영화라는 컨셉트에 충실하며 숨겨진 것을 찾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물론 마지막 페이지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메뉴 목록이 있기는 하다).

만화책과 같은 디자인의 부록 메뉴

부록 가운데 재미있는 부분은 극중 배트맨에 맞는 스턴트를 개발하기 위해 새로 창안된 무술인 ‘케이시’를 도입하는 과정, 전작 <머시니스트>에서의 깡마른 몸을 불리려다 그 정도가 지나쳐 촬영장에서 ‘곰’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크리스찬 베일의 일화 등을 들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히말라야로 나온 아이슬랜드 혹한에서의 촬영 과정, 역대 최대 규모의 거대한 세트 제작,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배트모빌을 창조하기 위해 아예 새로운 차를 설계하여 만든 ‘텀블러’의 제작 과정도 흥미롭다.

<배트맨 비긴즈>는 전체적으로 진지한 작풍의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충실한 DVD다. 극장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훌륭한 화질과 사운드, 아이디어가 빛나는 메뉴 구성, 영화 만들기 전반을 커버하는 부록 등 영화 이외의 볼거리도 풍부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인터뷰
텀블러의 초기 점토 모형

신 무술 케이시 시연 장면
배트케이브 세트 제작 장면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