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한창인 시절, 영국의 자그마한 항구도시에는 비틀거리는 소년들이 있다. 그들은 급우들의 돈을 빼앗고, 폭력을 행사하고, 소녀를 강간하며, 엑스터시와 대마초를 사탕처럼 소비한다. 중산층 홀엄마와 살아가는 로버트 카마이클은 학교 연주회를 위해 첼로를 켜는 반듯한 소년. 하지만 카마이클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썩어가고, 친구들과 함께 유명 요리사의 집에 몰래 잠입한 그의 악마성은 비린내나도록 끔찍한 살육과 함께 폭발한다.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는 21세기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다. 전쟁과 살육과 마약과 미디어의 거짓으로 점철된 현대 영국의 아이들은 광기를 다스리는 데 능하지 못하다. 평범한 소년 카마이클의 시계에서도 태엽은 하나 빠져있고, 그것은 불꽃처럼 한순간에 인간성과 도덕성을 태워내린다. 아이들의 무심한 폭력성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유효한 해석이다.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의 목소리는 주술처럼 아이들의 배경에 맴돌고, 영국의 교외도시는 격전이 휩쓸고 간 바그다드 마냥 핏기없이 황폐하다. 하지만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를 성공적인 정치적 알레고리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이 영화를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마지막 30여분동안 지속되는 카마이클과 친구들의 살육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흉폭한 시각적 체험중 하나일 것이다. 바스라질 듯 건조하게 영화를 끌어오던 토머스 클레이는 갑작스레 관객의 심장과 머리에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안겨주고 영화를 닫아버린다. 이 작품이 에딘버러를 비롯한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당시, 수많은 관객들이 폭언을 퍼부으며 극장을 걸어나갔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이 영화는 예술인 척 하는 포르노그래피다” “나는 예술이 어떤것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자유주의자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 위가 견딜 수 있는 한계지점까지 나를 몰아붙였다”). 이 영화는 도발적인 사회고발인가, 아니면 그저 구역질나는 싸구려 영상폭력에 불과한가. 어쨌거나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는 불쾌한 방식으로 불쾌한 세상을 고발하는 영화이며, 그 여운은 끔찍할 만큼 오래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