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반전통의 탐미주의자,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세계 (+영문)
2005-10-09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 <털시 루퍼 스토리>까지
피터 그리너웨이

피터 그리너웨이(1942~)는 낯선 아티스트다. 그의 영화미학은 전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일반적인 미학이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와 자연스런 편집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그리너웨이는 정반대로 간다. 이야기는 비논리적이기 십상이고, 편집도 문법을 자주 위반한다.

그는 미술학교 출신이다. 원래 영화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진학에 실패하는 바람에 미술학교로 방향을 돌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술학교에서의 생활이 그의 영화 미학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그의 영화는 언뜻 보면, 전부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탐미적인 취향에 경도돼 있다.

그는 바로 이런 미술 취향으로 데뷔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다. 1982년 발표한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 바로 장편 데뷔작인데, 미술학교 출신답게, 화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술과 권력’ 사이의 관계를 박진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 모두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전개된다. 드로잉을 하는 화가의 손작업만으로도 영화는 스펙터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새로운 시각이 돋보였던 것이다.

데뷔작의 복잡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장치는 장르영화의 단골 소재인 살인사건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살인사건의 동기와 범죄자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우리 관객이 알아서 짐작해야 할 뿐이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구조는 이후 그리너웨이의 악명을 높이는 계기가 됐고, 지금도 여전히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야기만 해대기에는 영화는 너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형식’ 실험주의자다.

두 번째 장편 <하나의 Z와 두 개의 O>(1985)에선 그리너웨이의 전통 파괴가 더욱 거세진다. 쌍둥이 형제의 ‘바로크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인용하며 묘사하는데, 괴기스럽고 황당하고, 그래서 반전통의 역동성이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숫자를 이용한 게임, 알파벳 놀이 등 감독의 유아적 집착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게 이 영화 때부터이고, ‘죽음’에 대한 명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 작품부터다. 또 촬영에 사샤 비어니(<히로시마 내 사랑>등 알랭 레네의 대표작을 모두 찍은 사람), 음악에 마이클 나이먼, 그리고 미술감독에 네덜란드 2인방인 벤 반 오스와 얀 로엘프스가 그리너웨이와 팀을 이뤄 평생의 동료로 작업하는 것도 이 영화 때부터다. 벤 반 오스는 <진주 귀걸이 소녀>의 미술감독이기도 하다.

<차례로 익사시키기>

그리너웨이의 클리셰, 곧 숫자를 이용한 게임, 괴기스런 죽음과 섹스, 남자들의 유아성과 여자들의 악착스러움은 <차례로 익사시키기>(1988)에서도 역시 반복된다. 유럽에 머물러 있던 그리너웨이의 명성은 흥행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가 발표된 뒤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도둑이 아내의 정부를 죽이고, 아내는 그 시체를 남편인 도둑에게 먹게 하는 부분에선 비위가 약한 많은 관객들이 고개를 돌렸고, 감독의 팬들은 악몽에 가까운 그런 상황 자체를 즐겼다. ‘그리너웨이의 골수 팬’들을 탄생시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90년대 들어 디지털, 인터넷 작업 등을 하며, 영화계로부터 약간 멀어져 있던 감독은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 3부작으로 다시 돌아왔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는 <털시 루퍼 스토리>(2005)는 3부작을 두 시간짜리로 다시 만든 것이다.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전통의 관습을 파괴하는 감독의 미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Peter Greenaway’s Aesthetics of Anti-tradition

From <The Draughtsman’s Contract> to <A Life in Suitcases>

Peter Greenaway(1942~) is an unique artist. His film aesthetics are far from traditional. If common aesthetics are based on logical story development and natural editing, Greenaway does the exact opposite. His stories are often illogical and the editing violates the grammar.

Originally, he sought to enter a film school, however, he changed his course towards film aesthetics after failing the admission and attended an art school instead. However, his life in art school prepared him well in his film aesthetics. At first glance, his movies seem to create an illusion of a collection of aesthetic pictures. This shows us his taste for aesthetics.

On his debut, he was noticed for his taste of arts. In his debut film, <The Draughtsman’s Contract> (1982), Peter Greenaway expresses realistically the tension between art and power through the main character who is, as expected, an artist. All the important sections of the movie progress with the artist’s painting. Bringing out a spectacular film with only the drawings of an artist, the film introduced a new point of view on art.

A murder case leads his complicated debut film as genre films often do. However, in this film, the motive and the killer are not made clear even at the end of the film and thus, the audience has to guess for themselves. This kind of mysterious structure has contributed in Greenaway’s reputation and even now, leaves the audience dazzled. He says, “There is much more to a movie than simply telling a story.”

Greenaway goes stronger with his anti-traditional style in his second feature film <A Zed & Two Noughts>. He cites a painting of a Dutch artist Vermeer in describing the twin brother’s baroque death which creates such a grotesque and absurd atmosphere that it emphasizes his anti-traditional strength. His fondness of childish episodes such as the number game and alphabet game started from this film, as well as the meditation of ‘death’. Moreover, he met his life-time team, the cinematographer Sacha Vierny(who worked for the most of Alain Resnais films including <Hirosima, Mon Amour>), musician Michael Nyman, and the dutch art directors Ben Van Os and Jan Roelfs with this film. Ben Van Os is also an art director of <Girl with a Pearl Earring>.

Greenaway’s cliche, a number game, bizarre death and sex, childishness of men and stubbornness of women, are also repeated in <Drowning by Numbers> (1988). His name was known only in Europe, however, after his successful film, <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1989), his fame spread out to the world. The thief kills the wife’s lover and the wife makes the thief, who is her husband, eat the corpse. People who had weak stomachs turned away from the screen whilst the director’s fans enjoyed such nightmares. The film is known for creating the ‘Greenaway’s mania fans’.

Working with digital and internet he was keeping some distance from film, however, he came back with 3 episodes of <The Tulse Luper Suitcases>, and <A Life in Suitcases>, which is being presented in PIFF this year is a remake of the 3 episodes into a 2-hour feature film. Of course he has worked on his anti-traditional aesthetics again in both form and p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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