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잊지 못할 게스트] 왕차오
2005-10-09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왕차오와 지아장커를 싸우게 만들었지
왕차오

부산에서 만났던 감독들 중 몇몇에 대한 인상이 내게는 남아있다. 예컨대, 싱가폴의 신예 로이스톤 탄은 재미있게 해주겠다고 자기 영화에 나오는 토끼 모자를 쓰고 인터뷰 장소에 나와서는 살짝 춤도 췄고, 그렇게 사진도 찍었다. 귀여웠지만, 조금 불쌍하고 철없어 보였다. 타이의 펜엑 라타나루앙(내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다음으로 좋아하는 타이의 감독)은 잘 배운 양아치처럼 삐딱하게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에게는 뭔지 모를 자학적 경계심이 있어 보였다. 일본 감독들은 대체로 신중하고 나른하다. 하지만, 최양일은 단정적이면서도 거만했다. <피와 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의 마적인 염력을 제외하곤 볼 게 없는 영화다. 고레다 히로카즈와는 어쩌다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그럼 다음 영화를 만들고 나서 다시 만나 오즈에 대해서 토론해 보자면서 끝맺었다. 그때는 내가 다소 무모했다. 영화처럼 기괴할 거라고 여겼던 캐나다의 가이 매딘은 정말 친절한 아저씨였다. 명함에 그려진 회사 그림 설명까지 해줬다. 그리고 14살 감독 하나 마흐말바프는 귀여웠고, 그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진짜 나이를 제대로 먹은 어른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 가장 적극적인 건 중화권 감독들이다. 특히 대륙 출신의 감독들이고, 그 중에서도 지하전영 이후의 감독들이다. 2004년 왕차오와의 인터뷰 때다. “2002년 부산에서 <씨네21>과의 인터뷰 당시에 지아장커의 형식미를 비판했었는데 어떤 이유였냐”고 그에게 물었다. “(크게 웃으며) 그런 적이 있었나?”라고 했지만, 뒤이어 길게 덧붙였다. 하지만, 이유가 시원치 않았거나, 통역이 불명확했다. 내친김에 “당신에 관한 비판도 하나 들려주겠다. 그런데 이건 다름 아닌 지아장커가 한 말이다”라고 물고 들어갔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들 사이에 어떤 의견차이가 있는지 꼭 들어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만난 자리였다. 그랬더니, 그는 웃으면서 “괜찮다. 그와 나는 친한 친구다”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정작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비장하게 했다. 여기서 지아장커와 왕차오 사이의 우회적 설전을 자세히 풀기에는 자리가 마땅치 않다. 제대로 들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누가 더 옳은 것도 아니다(누가 더 옳은가를 증명하는 것은 비평가의 굴레지, 영화감독의 굴레는 아니다). 대신 이 일화를 꺼낸 이유는 본인들도 없는 자리에서 싸움을 붙여놓고는, 정작 그것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던 내 모양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서로 깎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즉 나 같은 직업을 가진 누군가가 판을 벌이고 자리를 마련해서 적어도 진심으로 질문을 던졌을 때 그 핵심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그들을 보면서 부러움이 일었다. 누가 옳건 사력을 다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나는 그것을 다른 의미가 아닌 중국영화가 건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일상생활에서는 매사에 이런 태도로 상대방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을 좀 피곤해하는 편이고, 경외하는 편이지만, 이 상대 없는 영화의 설전만큼은 흥미로웠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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