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펜엑 라타나루앙 등과 함께 타이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고 있는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신작. 대략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판타지로 버무린 타이판 <첨밀밀> 같다. 촌뜨기 폿은 가족의 성화에 밀려 일자리를 구하러 방콕에 간다. 통조림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그는 경비원으로 직업을 바꾸지만 이번엔 폐소공포증 때문에 고생이다. 질식할 것 같은 도시 방콕에서 폿이 숨쉴 수 있는 건 같은 건물 청소부인 진 때문이다. 그는 하늘에서 어느날 떨어진 흰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다니는 강박증환자 진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진은 폿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꿈이 없는 남자 폿과 꿈 많은 여자 진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시티즌 독>은 엉뚱한 캐릭터들과 기발한 상황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잘려나가 통조림에 담겨진 손가락은 주인을 알아보고, 죽은 할머니가 도마뱀으로 환생해 의기소침한 폿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하늘에서 헬멧이 쏟아져 죽은 퀵서비스맨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살아나고, 테디베어는 사람처럼 담배를 피우고 말을 한다. “방콕은 우스꽝스러운 곳이다. 갑자기 도시가 팽창하면서 근대와 전근대가 기형적으로 몸을 섞고 있다. 부촌 옆에 빈촌이 붙어 있고, 매음굴 옆에 절이 붙어 있다. 그러니 이상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많다. 포드처럼 몸은 컸지만 나이를 먹지 않은 이들이 있고, 진처럼 마트에 가면 물건은 사지 않고 종일 반듯이 진열하는데 열중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풍경은 천연염료를 스크린에 끼얹은 듯한 환상의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다. 현실에서 주눅들어 사는 인물들은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영화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다. 타이 고유 의상과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매혹적인 색들이 평생 소장하고픈 근사한 그림책으로 완성되기까지는 무려 6개월 동안의 후반작업이 필요했다고. 그러나 감독이 애정을 짜내지 않았다면 모자라기 그지없는 캐릭터들이 소생할 수 있었을까.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의 색채 시연이 이국적인 정서를 자극하는데서 그친 것과 달리 <시티즌 독>의 그것은 비정상 도시인들을 위한 위안의 심리치료처럼 다가온다. <모던 타임즈> <매그놀리아> 등의 영화 속 장면을 효과적으로 패러디한 것이나 거대한 쓰레기 산 위에서 다시 조우하는 두 남녀 의 모습은 좀처럼 뇌리에서 지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