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과 ‘전설’로 칭할 유일한 배우. 바로 그레타 가르보다. 1905년, 스웨덴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920년대에 미국에 도착했고, 1930년대엔 MGM의 영화를 통해 불멸의 아이콘이 된 가르보는 36살이 되던 해 은막에서 사라져 이후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여인으로 남는다.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 10편과 다큐멘터리 1편을 수록한 작품집이 나왔다. 가르보가 출연한 영화는 ‘가르보 영화’라는 독립된 장르로 불릴 만한데, 레즈비언 여왕, 고급 창부, 스파이, 발레리나 등 소설의 히로인 혹은 실재했던 인물로 분한 그녀는 언제나 비극적인 사랑의 화신을 연기했다. 싸늘한 미소, 마른 웃음소리, 특이한 발음은 그녀의 전매특허였으며, 몸짓과 눈빛의 작은 변화만으로 관객을 휘어잡은 그녀의 아우라는 카메라에 마술을 불어넣었다. 어찌 <퀸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클로즈업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춘희>와 <안나 카레니나>에서 죽음을 맞는 그녀를 보며 흐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진정 <마타 하리>의 한 장면처럼 총살당하면서도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여자 혹은 <요부>의 대사처럼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였다(하지만 보통의 여자와 다른 그녀의 모습과 연기, 소년 같은 면모에 거부감을 느낀 남자도 많았다고 한다).
위 작품에 <육체와 악마> <신비로운 여인>를 더하면 (다소 평면적인 영화의 완성도와 달리) 오로지 가르보의 매력을 주무기로 한 작품군이 완성된다. 반면 1932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그랜드 호텔>은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이틀 밤을 보내는 인간 군상을 다룬 앙상블 필름이며, 유진 오닐의 작품을 각색한 <안나 크리스티>는 가르보의 영화로는 드물게 하층민의 삶을 다룬 사실주의 작품이고, 에른스트 루비치와 함께한 <니노치카>는 ‘가르보가 웃는다’는 문구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은 바 있는 그녀의 거의 유일한 코미디영화다.
원본의 문제인 듯 DVD의 복원 상태는 그리 훌륭하다 할 수 없고, 부록도 풍부하진 못하다. 다만 세편의 무성영화엔 음성해설, 스웨덴의 전설적인 감독 빅토르 시외스트룀이 연출한 <성스러운 여인>의 잔존본, 다른 엔딩 등의 부록이 지원된다. 그리고 <안나 크리스티>는 독일어 버전을, <춘희>는 루돌프 발렌티노가 나오는 1921년 버전을 별도로 수록해놓았다. <가르보>는 유명감독 케빈 브라운의 이름값을 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 그녀와 실제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지인들의 말에서 그녀는 연기를 했을 뿐이란 사실과 스타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마지막 카메라 테스트에 응한 가르보의 사십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