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잊지 못할 게스트] 세디그 바르막
2005-10-11
글 : 이영진
코피에 닭똥 같은 눈물까지 봤어요

개막일 아침, 혼절 직전에 PPP 관계자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알마타영화제에 참석했다 여권과 비자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불참을 통보해왔던 세디그 바르막 감독이 다시 부산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게스트의 여권과 비자를 잃어버린 한심한 알마타 영화제쪽에 항의서한이라도 보내서 분노를 표시하려고 했던 나는, 울다가 웃었다. 전날 만든 데일리 첫 호에는 세디그 바르막이 부산에 못오게 됐다는 기사가 실렸고, 결과적으로 오보를 한 셈이 됐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세디그 바르막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8회 영화제때부터 시작됐다. 지글거리는 화면의 프리뷰 테이프로 <천상의 소녀>를 봤지만, 두려움에 떠는 영화 속 오사마의 눈빛은 한동안 뇌수에서 둥둥 떠다녔다. 마지드 마지디의 <맨발로 헤라트까지>와 함께 <천상의 소녀>는 내가 미리 골라본 그해 영화제 상영작 중 베스트였다. 그리고 얼마 후, 부산에서 탈레반정권 이후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만든 세디그 바르막을 만날 수 있었다. 권투를 해도 될만큼 다부진 체격의 그였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산까지 이틀 동안의 고된 이동 때문에 무척 피곤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밤 9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이란어 통역의 미숙함으로 더디게 진행됐다. 영화를 보지 못한 통역자를 위해 질문을 자세하게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하나의 문답이 완성되기까지 15분 가까이 걸렸다. 현기증 나는 이란어를 수첩에 적어가며 최선을 다해 답을 들려줬던 그는 인터뷰 도중 코피를 흘렸고, 대화는 곧바로 중단이 됐다. 아무래도 힘들겠군, 이라고 판단할 무렵, 그는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다음날 자신이 점심을 거르고서라도 시간을 짜내서 추가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내 얼굴에 잠시 서렸던 낭패의 표정을 읽었던 것일까. 그는 차마 던지지 못했던 요청을 알아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튿날, 두 번째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제작을 금지한 탈레반정권 아래서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숨죽이다 결국 무장게릴라들을 따라 전선 취재를 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소상하게 들려줬다. 무려 4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부러워하자, 그는 “다른 나라를 떠돌면서 살아야 했던 시련의 결과”라고 해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엔딩. 촬영을 끝낸 날, 현장의 분위기를 자세하게 떠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말을 멈춘 그의 눈에는 점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통역을 맡은 후배의 눈 또한 서서히 충혈됐다. 도대체 무슨 말을 나누는 것인지 답답했다. “물이라도 더 드시겠어요?” 중년 사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는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물잔을 들어올려 바디 랭귀지를 시도했던 나만 뻘쭘했다. 나중에 기사 쓰기 전 “해냈다는 감격에 모두 안고서 꺼이꺼이 울었던” 그날의 상황을 전해들으며, 뒤늦게 코끝이 시큰거렸다.

뉴커런츠 상을 <천상의 소녀>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2004년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그가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르는 것을 우연히 TV에서 보고 만세를 불렀다. 2005년. 그가 두번째 영화 <아편전쟁>의 시놉시스를 들고 PPP를 찾는다. 궁금하다. 올해도 만나면 그는 울까. 울지 않고, 환한 웃음을 봤으면 좋겠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 바로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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