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일부 영화제는 상부상조라는 아름다운 사자성어를 몰랐던 것 같군요. 96년 밴쿠버영화제는 <남자이야기> <오늘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홍시> <비천> 등 네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필름을 보내기로 했는데, 보내지 않았답니다. 결국 <비천>만 상영 하루 전에 필름이 도착했군요.
그로부터 2년 뒤, 이번엔 리우데자네이루영화제가 사고를 쳤습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멕시코 환상곡>의 필름을 보내주기로 하고선 상영을 늦추게 되어 못 보내겠다고 했다니, 당시 프로그래머의 마음은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첫 해인지라 사고도 많았던 96년 <개같은 날의 오후>는 스크래치가 심해 필름을 교체했고 <코카서스의 죄수> 등 몇몇 영화는 필름이 늦게 와서 영문자막만 넣은채 상영했습니다. 당시 사고에 대해 박광수 감독은 이런 코멘트를 남기셨습니다. “어느 영화제나 필름 수급문제 때문에 항상 말썽이 일어난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일지라도, 두번 실수는 안되는 법. 99년 이창동 감독은 개막작의 기자시사회 도중 이대로는 상영을 계속할 수 없다면서 벌떡 일어나셨는데요, 확인된 바로는 필름에 스크래치가 나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긁었는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고요. 작년엔 특공작전을 방불케하는 필름수송작전이 있었다죠. 허문영 프로그래머는 <신성일의 행방불명> 필름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후반작업은 끝날 줄을 몰랐다고요. 결국 신재인 감독은 그날 아침 비행기 편으로 필름을 부쳤는데, 하늘도 무심하여,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늦게 출발했답니다. 허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 팀장에게 5만원을 쥐어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필름을 들고오라 하였고, 마침내 상영 5분전 필름이 영사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