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유리의 사도> 감독 재일동포 2세 김수진씨
2005-10-11
글·사진 : 임인택
‘윗세대’ 슬픈역사 영화로 남겨야죠
김수진 감독

재일동포 2세 김수진(51)씨. 연극계에서 그는 명사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대표다. 갈무리 대목에서 무대 뒤를 가린 천막이 걷히며 10m 크기의 비행기가 눈앞에서 날아갔던 <바람의 전설>(지난 7~9월)과 뗏목을 타고 한강을 가로질러 건너편 둔치의 무대 위로 배우를 등장시켰던 <인어전설>(1993년)을 한국 관객은 잊지 못한다. 그가 이번엔 영화를 들고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조감독은커녕, 촬영 보조도 해보지 않았던 그가 만든 두 번째 영화, <유리의 사도(Dreaming of Light)>다.

“아, 걱정돼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너무 어려워하지 않을까 해서요.” 보자마자 대뜸 던진 한 마디다. 약간의 흥분과 염려가 뒤섞여 있다. 은유와 상징이 많은 데다 판타지가 두드러진 탓일 것이다. 사실 닫힌 사각의 무대를 무한 공간으로 확장한 연극연출부터가 그가 추구하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특장을 잘 보여준다.

한 노인이 커다란 렌즈를 엉덩이로 닦다 쓰러진다. 어수룩하고, 행동은 과장된 이케야. 작은 유리 제조 회사의 사장이다. 천체망원경에 쓰일 커다란 렌즈를 손수 가공해낼 이는 동양에서 그가 유일하다. 하지만 회사가 망해 곧 넘어갈 지경이다. 사랑에 실패해 자살하려던 요코와 요코의 사랑을 도무지 눈치채지 못하는 이케야의 부하직원 요지로가 그런 회사를 살리려고 함께 힘을 모은다. 조금만 더 닦아내면 하나의 생명을 얻게 될 렌즈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렌즈는 그냥 유리일 뿐이지만, 세공된 ‘각도’에 따라 보이는 세상은 달라지잖아요. 그 각도를 만들어내는 일은 바로 사람의 몫입니다.” 요코는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긴 학교를 찾아가 렌즈를 닦아낼 부드러운 모래를 구하고 숨죽인 채 잠겨있는 오르간을 연주한다. 간절한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되고, 꿈이야말로 오래전부터 자신을 실재로 만들어줄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 비친다.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판타지가 내 안에 있다는 걸 이미 깨달았죠.” “연극하듯 만들었다”는 첫 작품 <밤을 걸고>(2002년)를 두고 한 말이다. 재일동포 1세대들의 슬픈 역사를 그린 재일동포 양석일의 원작을 ‘무모하게’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1세대들의 역사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고, 연극으로 만들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일동포 영화감독 최양일씨는 10억엔(100억원)이 들 거라며 주저했던 작품. 신주쿠양산박 단원들이 직접 군산에 세트를 짓는 등 40억엔짜리 한일 합작영화를 완성했고, 곧바로 일본 영화감독협회가 주는 최우수 신인감독상과 마이니치영화상 미술상까지 거머쥐었다.

김 감독은 <밤을 걸고> 2부인 <언젠가는 꼭>을 준비하고 있다. <유리의 사도>마저 “2부작을 위한 영화 공부 과정”이라고 설명할 만큼, 1세대 동포들의 삶을 ‘금강석’에 새겨놓는 일이 그에겐 절실하다. 원작대로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폐허가 된 일본의 오사카 군수공장에서 훔친 고철로 연명했던 조선인의 불행한 삶을 그린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이들의 사랑을 극대화할 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너는 내 운명>을 봤습니다. 그런 진한 감정들을 그리려고 했는데, 이미 구상해 놓은 장면들도 영화에 담겨 있어서 너무 놀랬어요. 많이 울었습니다.”

<유리의 사도>에는 영화의 주인공(이케야 역)이자 시나리오까지 쓴, 일본 연극계의 거장 가라 주로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김 감독도 “감독으로서 시나리오를 뛰어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연극은 일단 무대 막이 시작하면 배우가 책임지지만, 영화는 전체가 감독의 책임인 걸 절감했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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