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레이어 케이크> 당신은 껍질을 깨고 벗어날 수 있는가?
2005-10-11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이 영화의 제목 <레이어 케이크>는 기본적으로 여러 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케이크의 일종을 뜻한다. 그래픽 프로그램을 조금이라도 만져 본 사람이라면 ‘레이어(layer)’라는 개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한 꺼풀 한 꺼풀 벗길수록 새로운 층이 나타는 이 케이크의 구조는 영화의 구조와 일맥상통한다. 배경으로 다루어진 영국 마약 밀매 세계의 촘촘하게 짜인 인맥의 층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복잡하게 뒤얽힌 영화 자체의 플롯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젊은 마약 밀매범(대니얼 크레이그 - 크레딧에도 ‘XXXX’라고 표기된다). 그는 철저하고 깨끗한 비즈니스를 통해 험하기 짝이 없는 지하 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가 딱 한 가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마치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기듯, 범죄의 소굴에서 깨끗하게 손을 털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막 은퇴 준비를 끝내 놓은 상황에서 갑자기 자신의 보스로부터 친구의 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XXXX는 영 찜찜하지만 ‘마지막 한 건’으로 생각하고 일을 맡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주위의 모든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주위의 동료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고, 보스는 자신을 등쳐먹으려 하는 등 XXXX는 계속해서 최악의 상황에 봉착한다. 이제 혼자 남게 된 그는 과연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 <스내치>의 프로듀서 매튜 본의 감독 데뷔작인 <레이어 케이크>는 얼핏 대략적인 줄거리와 설정만 본다면 가이 리치 감독의 앞서 말한 두 작품을 연상케 하지만 등장인물, 특히 XXXX에 대한 섬세한 정서적, 심리적 묘사가 더해져 그 나름의 깊이를 가진 독창적인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다. 한 때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고려되기도 했다는 XXXX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의 연기가 압도적인데, 범죄라는 사회의 한 층(레이어)에 속한 이상 끊임없이 그 속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린 솜씨는 발군이다.

한글 자막 없는 부록이 옥의 티

DVD의 말끔한 영상은 우울한 분위기의 영화와 묘하게 어울리는 다소 탈색된 색감이 인상적이다. 디테일 묘사가 훌륭하고 선명도도 뛰어난 편이라 크게 흠 잡을 곳이 없는 안정된 표현을 보여준다. 2.4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이 지원된다.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는 또렷한 전달력으로 충실히 제 기능을 하며, 듀란 듀란, 카일리 미노그, 조 카커 등의 인상적인 팝 음악과 스코어가 영상과 어우러져 감상공간을 분위기 있게 감싼다.

충실한 부록은 한글자막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죄 영국식 영어라 알아듣기도 쉽지 않다. 감독과 원작자의 꼼꼼한 음성해설과 내셔널 필름 시어터에서 열린 감독 및 주연 배우와의 질의응답 세션은 작품의 제작 과정이나 해석에 관해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모른다면 전혀 쓸 데가 없다. 본편과는 180도 다른 미공개 엔딩과 삭제 장면(음성해설 지원), 스토리 보드와 실제 장면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멀티 앵글 기능도 아깝다.

스토리 보드 비교
질의응답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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