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성실한 이야기꾼과 만나는 자리,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2005-10-12
글 : 문석

이 파편화된 세상에서 다른 이와 진심으로 교류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LA 근교의 소도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소통을 탐험하는 영화다. 노인 대상 택시를 운전하며 비디오 작품을 만드는 크리스틴은 구두가게 점원 리처드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와 이혼한 뒤 그 집에 얹혀살고 있는 리처드는 그를 피한다. 리처드의 두 아이 피터와 로비는 아버지와의 대화보다는 음탕한 인터넷 채팅에 몰두하고, 이웃집 소녀 실비는 피터를 눈여겨본다. 여기에 펠라티오로 내기를 벌이는 두 소녀, 두 소녀에게 야릇한 메시지를 전하는 리처드의 직장동료 앤드류,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마이클, 비밀스런 욕망을 품은 큐레이터 등이 뒤얽힌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외롭다는 것이다.

관계와 소통을 향한 욕망은 절실하지만, 그들은 상처받을 걸 두려워하거나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미덕은 절망적인 단절의 상황에서조차 넉넉함과 웃음을 잃지 않고 마술과도 같은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이다. 크리스틴과 마이클이 봉지 속 금붕어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이나, 꼬마 로비와 채팅 파트너가 공원에서 만남을 가질 때, 피터와 실비가 함께 집 천장을 바라보는 장면 등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물길이 열림을 보여주는 놀라운 대목들이다. 새를 찍은 사진 액자가 나무 등걸에서 안식을 취하고 로비가 떠오르는 해를 동전으로 맞이할 때, 우리는 일상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라는 로비의 음탕한 메시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고, 크리스틴과 리처드의 작품이 미술관에서 공연될 때, 희비의 순간은 감동으로 승화된다. 크리스틴 역을 직접 연기하기도 한 푸른 눈의 미란다 줄라이는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유머와 아이러니, 찌릿한 감동, 그리고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줘 칸에서 황금카메라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받았고, 선댄스에서도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새로운 시네아스트의 출현을 목도하는 순간이며, 성실한 이야기꾼과 만나는 자리다. <모텔>과 함께 한국계 미국인 지나 권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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