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이란 뉴시네마의 효시, 다리우스 메흐르쥐의 <소>
2005-10-1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 걸작선 목록에는 세 편의 이란 영화가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작품인 <클로즈업>과 <순수의 순간>이 그 두 편이고, 둘 모두 이란 영화의 백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리우스 메흐르쥐가 연출한 <소>라는 낯선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1980년대 이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국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며 이란 영화의 미학적 명예를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미학의 실명을 처음으로 알린 것은 다리우스 메흐르쥐였고, <소>였고, 그 움직임을 가리키기 위해 동원된 말이 ‘뉴 이란 시네마’였다. 1969년에 제작된 <소>는 질 낮은 대중영화가 선전하던 때에 포르흐 파로허저드, 바흐람 베이자이 등과 함께 등장하여 이란 영화에서 처음으로 ‘작가’적 개념을 도입한 다리우스 메흐르쥐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란 영화가 산업적으로 후퇴하며 예술영화를 위축시키지 않았거나,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대중을 현혹한다는 죄목으로 많은 극장이 불타 없어진 것과 같은 영화적 환란이 없었다면, 우리는 키아로스타미나 마흐말바프보다 다리우스 메흐르쥐의 이름을 먼저 알았을지 모른다. 비유컨대 <소>는 혁명전 이란 예술 영화의 처녀작이자 유작이다.

우물 하나를 가운데 둔 외진 시골마을에 핫산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다. 그는 아내보다 그의 암소를 더 사랑하고 아낄 정도다. 그런 그가 어느날 잠시 마을을 벗어난 사이 (누군가의 소행으로) 소가 죽어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소에 대한 핫산의 각별한 애정을 알기에 소가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핫산은 충격으로 점점 미쳐가고, 심지어는 자신을 소라고 여기며 그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소>는 마치 기승전결의 우화 같다. 그러나 <소>는 굉장히 차갑고 불균질한 리얼리즘 영화이며, 모호한 인간 성질 자체를 알레고리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영화이다. <소>는 한 가닥으로 질러가기보다는 번져나가는 쪽이다.

완전히 미쳐버린 핫산을 도시로 데려가 치료받게 하자고 의견을 모은 마을의 남자들은 끌려가지 않으려는 핫산을 줄에 묶어 빗속을 뚫고 간다. 하지만 핫산은 그럴수록 더 난폭하게 버티고, 급기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마을의 한 남자가, 그것도 마을에서 가장 온화하고 지적인 그가 “움직이란 말이야, 이 짐승 새끼야”라고 소리치며 사정없이 채찍질을 한다. 그 순간, 나머지 두 명과 소리친 남자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 비인간성에 놀라 빗속에서 얼어붙은 듯 서로를 난망하게 쳐다본다. 여기가 <소>의 정점이다.

다리우스 메흐르쥐는 소가 아닌 남자가 자신을 소라 생각하고, 소가 아닌 사람을 소라고 여겨 채찍질을 가하는 인간의 잠재적 ‘변질’을 알레고리화 한다. 그래서 이 장면에 이르면 영화의 초반을 돌이켜보게 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화면을 채우는 것은 궁금한 표정으로 뭔가를 쳐다보는 마을사람들의 시선이다. 마을에 살고 있는 어느 광인을 붙잡아 놓고 장난치고 있는 철없는 어른과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 보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이 마을에는 두 명의 광인이 있는데, 하나는 이미 영화시작 전부터 미쳐 있는 그 광인이고, 또 하나는 영화가 시작한 후 미쳐버리는 핫산이다. 미친 인간에 대한 아직 미치지 않은 인간들의 시선,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언제 건너뛸지 모르는 위태로운 인간의 변질적 가능성이 <소>의 흥미로움이다. 비록 우리가 알고 있는 이란 영화의 백미를 뛰어 넘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 작품은 독특한 리얼리즘의 화술을 보유한 이란 영화의 희귀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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