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망똘망한 눈동자의 인도네시아 감독 리리 리자는 올해 부산에 두가지 볼일이 있다. 2002년 PPP 프로젝트였던 <풍운아 기에>를 상영하고, 또다시 PPP에 프로젝트를 들고온 것이다. 2시간 27분에 달하는 <풍운아 기에>는 1960년대 정치운동가였던 기에의 삶을 죽기 몇년전까지만 담은 영화다. “기에는 스물 일곱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죽었다. 그는 새로운 정부가 자신이 거부했던 부패한 정부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실망했고, 몇년 동안 밑바닥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모두들 신랄하고 비판적인 그를 피했다. <풍운아 기에>는 어느 외로운 인간에 관한 영화인 셈이다”.
그는 잊혀졌던 기에를 복원했지만, 단지 과거에만 집중한 건 아니다. 그는 <풍운아 기에>가 동시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에선 지금도 1960년대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정치적인 억압 때문에 영화제작이 어려웠던 인도네시아는 요즈음 산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리리 리자처럼 믿음과 신념으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로드무비를 들고 부산을 찾아온 리리 리자는 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