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영화를 사고 파는 국제적인 시장인 에이에프엠(American Film Market)의 한 부스에서 그녀의 신작을 만났다. <안소니 짐머>였다. 트레일러 정도밖에 없었지만 꼭 잡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누군가에게 선점 된 상태, 못내 아쉬웠다. 2005년 5월, 칸에서 일어난 ‘소피 마르소’의 해프닝은 잠시나마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극장으로 되돌려 놓았다. 불혹의 나이에도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풋사랑의 추억에 잠기게 했다.
학창시절, 봄·가을 소풍 때나 시험이 끝나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뭉쳐서 영화관을 자주 찾아가곤 했다. 친구들과는 2류 극장인 재개봉관을 가는 것이 대부분 이었는데 저렴한 요금에다 가끔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청룽(성룡)의 수많은 영화, <사학비권>, <취권>, <소림 36방> 등 홍콩 무술영화와 <매드맥스>시리즈 등 비(B)급 액션영화에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때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가까운 이들과 함께 시내를 가는 것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커튼이 올라가면서 안경점, 예식장 광고가 몇 번 반복된다. 이윽고 맛배기 영화와 함께 불이 꺼지고 소음이 잦아들면,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순진한 꼬마들의 사랑 이야기였다. 파리로 전학온 앳된 소녀 소피 마르소. 그녀는 파티에 초대받고, 그곳에서 사랑에 빠진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 함께 춤추는 소년과 소녀. 그리고 설레는 내 마음. 그렇게 시작된 나의 풋사랑은 결국 코팅한 소피 마르소 책받침을 사게 만들었다. 책받침과 함께 집으로 가는 내내 그녀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영원히 간직할 것 같았던 나의 열정은 어느 순간 닳고 닳은 책받침처럼 기억의 한 귀퉁이로 퇴색했다가 그녀의 당혹스런 미소와 함께 나타났다. 소피 마르소는 브룩 쉴즈와 <파라다이스>의 피비 케이츠 뒤를 이어 전 세계의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으며, 지금까지도 <라붐>의 ‘빅’은 청순미의 대명사로 손꼽히고 있다.
그녀는 이후 속편 <라붐2>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들어서는데 <유콜잇러브>, <고요한 펠리세이드>, <팡팡>, <구름 저편에>, <브레이브하트>, <007 언리미티드>, <벨파고>, <안나 카레리나>, <혁명가의 연인>, <피델리티>, <샤샤를 위하여>, <달타냥의 딸>, <로스트 앤 파운드>, <넬리>, <안소니 짐머> 등 제법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한국에 소개된 영화는 몇 편 되지 않았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다행히 반가운 것은 <라붐3>가 프리 프로덕션 중이라는 소식이다. 내년쯤에는 <라붐 1, 2, 3>을 한꺼번에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10대에서 40대까지 같이 늙어가는 소피 마르소와 다시 한번 파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