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아키라> DVD로 만나는 전설의 재패니메이션
2005-10-13
글 : 한청남

1982년 첫 연재가 시작된 만화 <아키라>는 불세출의 작가 오토모 가츠히로의 탄생을 알린 명작이지만 애니메이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상상력과 대파괴의 순간을 스틸 컷처럼 포착한 가공할 디테일은 일본 만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영상화에 있어 거대한 난관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어중간한 형태로 만들어질 경우 원작에 못 미치는 범작 내지 졸작이 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다른 감독들의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며 절치부심하던 오토모 가츠히로가 직접 감독을 맡고 8개 이상의 대형 업체들이 제작에 뛰어든 극장판 <아키라>는,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대였던 10억 엔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으로 1988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감독의 완벽주의와 일류 애니메이터들의 피땀 어린 노력,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프리스코어링(선녹음 후작화) 과정을 통한 풀 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점 등이 제작비 상승의 큰 요인이었으며, 여기에 인도네시아 민속 악기를 이용한 파격적인 사운드트랙과 초창기 컴퓨터 그래픽의 도입 등 온갖 실험이 더해졌다. 그로 인해 <아키라>는 재패니메이션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나 당시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투자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흥행부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과감한 투자였다고도 볼 수 있다. 해외에서의 호평과 함께 재패니메이션 세계진출의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여 <공각기동대> 같은 세계시장을 노린 대작들이 나오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매트릭스> 같은 재패니메이션의 상상력이 가미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역시 <아키라>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대원DVD를 통해 발매되는 <아키라>는 일본에서 지난 2001년 DVD화를 위해 새로이 리마스터링한 버전을 담고 있다. 5.1 채널 사운드에 주안점을 두었는지 화질은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편. 최근 애니메이션들을 가볍게 능가하는 압도적인 영상과 실사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여주는 반면 군데군데 잡티가 보이고 선명도가 떨어지는 등 세월의 흔적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어쨌든 애니메이션팬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조악한 화질의 해적판 비디오로 보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정식 DVD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

화질에 비해 사운드는 상당히 탁월하여 이질감까지 들 정도. 바이크의 질주음과 폭발음 등 작품의 현장감을 살리는 효과음들이 정확한 방향에서 박력 있게 재생되는데, 특히 신시사이저와 전통 타악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사운드트랙은 5.1 채널 리믹스를 통해 위력적으로 변모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할 의도로 제작된 <아키라>의 독특한 음악들은 듣는 이를 사방에서 완벽하게 에워싸고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부록에 실린 작곡가 야마시로 쇼지의 해설에 따르면 5.1 채널을 통해 비로소 본래의 의도가 되살아난 셈이다. 미래지향적인 영상과 원초적인 리듬의 충돌이 새로운 <아키라>를 창조하고 있다.

풍부한 제작관련 자료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드물게 상당량의 부록이 두 장의 디스크에 담겨있다. 그 중 첫 번째 장에 수록된 ‘프로덕션 리포트 1988’는 제작 당시 촬영한 영상물로서 젊은 시절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모습과 제작 과정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15만장의 셀화, 327가지 색상 등 전례 없는 대작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이 혼자서 다 그렸다는 콘티북에 관한 부분에서는 그가 진정한 천재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프로덕션 리포트 2001’은 5.1 채널 리믹스 과정이 담긴 부가영상. 5.1 채널에 관한 작곡가와 음향기사의 전문적인 해설과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당혹스러우리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이해를 돕는 자료화면도 준비되어 있어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악과 멀티채널 사운드에 관한 철학이 담겨있어서 ‘왜 5.1 채널인가’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되는 부록이다.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
프리스코어링 과정
캐릭터 소개
음악에 쓰인 인도네시아 민속 악기

‘애니메이션 아카이브’는 제작 과정 중 하나인 ‘퀵 액션 레코드’ 관련 자료들과 원화들을 모은 부록. 퀵 액션 레코드란 성우의 목소리에 맞춰 캐릭터의 입모양과 동작을 보정하기 위해 선으로만 된 그림들을 비디오로 임시 촬영한 것이다. 수작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아키라>의 또 다른 매력을 확인시켜주는 영상들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관한 내레이터의 해설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어, 팬이라면 반드시 체크해볼 것을 권한다. 또한 같은 영상을 오토모 감독의 음성해설이나 혹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함께 볼 수도 있다. 비록 작품 전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독의 목소리를 통해 제작 당시의 에피소드들을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부록 디스크의 마지막 부록으로는 ‘아트워크 갤러리’가 있다. 포토 갤러리 형식의 동영상으로 작품에 쓰인 디테일한 배경 그림과, 원화, 이미지보드 등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부록 디스크에는 초기 설정 자료와 NG 콘티 등 제작에 쓰인 각종 데이터가 수록됐다고 하는데, 리뷰를 위한 샘플 디스크가 준비되지 않아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퀵 액션 레코드
아트워크 갤러리

재패니메이션의 금자탑 <아키라>. 비록 국내에서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정식 소개가 이루어졌지만 작품의 탁월한 완성도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5.1 채널로 새롭게 바뀐 사운드와 풍성한 부록은 소장가치는 더욱 높여주고 있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꼭 가지고 있어야할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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