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영화제에 이례적으로 한국영화 3편이 초청됐다. 지난 9월23일부터 10월9일까지 열린 제43회 뉴욕영화제에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와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 등 3편이, 감독들이 참석한 가운데 소개돼 큰 호응을 얻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친절한 금자씨>. 프레스 스크리닝과 일반 스크리닝에서 모두 기립박수를 받는 등 미디어와 관객이 모두 열띤 반응을 보여주었다. 박 감독은 영화제를 위한 짧은 체류기간 동안 스크리닝 질의응답 시간 외에도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 메이저 미디어와 많은 인터뷰를 가졌고, 영화제 행사장 근처에 위치한 ‘타워 레코드’ 매가 스토어에서 팬들을 위한 <올드보이> DVD 사인회를 갖기도 했다.
관객은 박 감독에게 “3부작 계획을 처음부터 했느냐”라는 질문에서부터 “스토리보드를 어느 정도 제작하고 참조하는지”까지, 일반적인 것부터 영화제작에 관련된 상세한 내용까지 많은 질문들을 던졌다. 박 감독은 “<올드보이>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시아영화 중 판권을 넘겼지만 정작 만들어지는 영화는 별로 없기 때문에 어서 만들어지기나 했으면 좋겠다”며 “하지만 만들어져도 내 영화보다 더 좋지 않았으면 한다”고 유머러스하게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친절한 금자씨> 기립박수, <그때 그 사람들>도 호응
한국 개봉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때 그 사람들>은 이번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자료화면 부분이 삭제된 채 검은 스크린 위에 영문자막으로 처리돼 상영됐다. 질의응답 시간에 임 감독은 부시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도 해 전통적으로 리버럴 성향이 강한 뉴요커 관객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을 “부분적으로 정치적 스릴러, 또 다른 부분은 혼란하고 피비린내 나는 블랙코미디”라며 임 감독이 “한국의 실화를 호기심이 가는 매력적인 영화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올해 <극장전>으로, 뉴욕영화제에 두번 초청됐던 임권택 감독을 젖히고 가장 많이 초청된 한국 연출가가 된 홍상수 감독은 이번 행사에서 관객으로부터 줄거리와 캐릭터 관련의 비교적 무난한 질문들을 받았다. 지난해의 경우 홍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상영 뒤 여성 캐릭터 표현에 대한 불만을 담은 여성 관객의 공격적인 질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내년 초 선댄스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인 <친절한 금자씨>는 2월3일 뉴욕에서 개봉된다. 이 작품의 배급사 ‘타탄 필름’은 최근 영화 제목을 <Sympathy for Lady Vengeance>에서 <Lady Vengeance>로 변경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키노 인터내셔널’의 배급으로 ?월14일부터 뉴욕에서 개봉됐다. 그러나 ‘시네마빌리지’와 ‘이매진 아시안’ 등 비교적 소규모 극장에서 개봉해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맨해튼 링컨센터에서 개최된 이번 행사에는 17일간 세계 각국에서 초청된 24편의 장편영화와 단편영화 13편이 소개됐다. 이와 함께 일본 영화역사를 대표하는 ‘쇼치쿠 컴퍼니’의 대표작 45편이 페스티벌 회고전으로 상영됐고, ‘HBO 필름스 디렉터스 다이얼로그’ 등 감독들과의 인터뷰, 질의응답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또 오랫동안 화질이 좋지 않은 비디오테이프로만 볼 수 있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75년작 <여행자>가 복원 상영됐다.
역사적 사건 다룬 영화가 많아
이번 영화제에는 특히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때 그 사람들>을 비롯해 오프닝 작품이며 50년대 매카시즘에 대항한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R. 머로의 이야기를 다룬 <굿 나이트 앤드 굿 럭>, 59년 전 가족 살인사건을 소설화한 트루먼 카포티의 이야기를 담은 <카포티>, 68년 5월을 파리 젊은이들의 눈으로 본 <레 자망 레귤리에>, 팔레스타인 자살폭탄범들의 이야기를 그린 <천국을 향하여>, 미국의 노예제도를 다룬 <만달레이> 등이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이외에 60, 7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여장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닐 조던 감독, 킬리언 머피 주연의 <명왕성 위에서 아침을>(Breakfast on Pluto),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버블>, 80년대 뉴욕 분위기와 한 지식층 가족의 붕괴를 절묘하게 그린 노아 봄바흐 감독의 <오징어와 고래>,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 이후 다시 합작한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과 코미디언 스티브 쿠간의 <트리스트럼 섄디: 고추와 황소 이야기> 등이 관객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트리스트럼…>은 영화화가 불가능하다는 L. 스턴의 9권짜리 미완성작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생애와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원작처럼 탈선을 거듭하는 영화 내용과 함께 이 영화를 찍는 스탭의 이야기를 함께 넣어 영화 속의 또 다른 영화를 재치있게 보여줬다. 특히 영화 속의 영화주인공 트리스트럼과 아버지 역을 함께 맡은 쿠간은 극중에서 코믹하고 때로는 어수룩하게 자기 자신까지도 연기해 박수를 받았다.
뉴욕 영화팬들을 위한 ‘쇼케이스’로 자리잡은 뉴욕영화제는 40여년간 1천여편의 작품들이 소개됐지만, 한국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 88년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2002년 임 감독의 <취화선>,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 2004년 홍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