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정성일의 사적 부산영화제 견문방문록
2005-10-20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아! <나와 함께 있어줘>만으로 행복했나니!

한 가지 잘 알려진 이야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영화평을 썼고, 기자로 취재를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결정적인 체험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1940년 베니스영화제를 취재하기 위해 상 마르코 광장에 갔다(나도 가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거기서 쇼크를 받았다. 저 웅장한 단상, 휘황찬란한 깃발들, 질서정연한 의자들, 번쩍거리는 사자상, 그는 거기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보았다. 정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영화제에서,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베니스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표면은 자기 시대의 공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만일 세상의 표면을 고스란히 찍는다면 그보다 더 세상의 내면의 풍경을 찍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거기서 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스즈키 세이준 감독을 (우연히) 만나다

<지고이네르바이젠>

나는 이 글을 지금 부산(영화제)에서 쓴다. 올해 나는 부산에 말 그대로 그냥 놀러왔다. 아무런 일정도 없고, 특별히 누군가와 만날 약속도 없었다. 하지만 몇편의 영화는 정말 보고 싶었다. 나는 안토니오니와 같은 심오한 깨달음을 올해 얻지 못했다. 다만 욘사마와 문정혁(으로 소개된 에릭), 이병헌을 보기 위해서 몰려다니는 사진기자들의 몸싸움과, 일본 아줌마들의 간절한 눈길을 보았을 뿐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라다이스호텔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그 아줌마들의 애절한 사연을 내게도 들려주었다. 한 아줌마는 매우 절실한 표정으로 내게 욘사마를 본 적이 있느냐고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밤중에 비즈니스 룸에서 메일을 열어보는 나에게 대만 여기자는 큰 소리로(대만 기자들의 특징은 때와 장소를 가라지 않고 크게 말한다는 것이다) 이영애는 부산에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아마도) 화어권 기자들은 일제히 나의 입을 주시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한국이라는 물결, 한국이라는 유행. 그 트렌드의 한복판. 올해 부산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지난해와 달리 주말만 피한다면 보고 싶은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새로 가세한 (해운대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프리머스 멀티플렉스는 예쁘장한 영화관이었다. 여기서 내가 본 (<씨네21> 영화제 데일리에 내가 소개한) 리노 브로카의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는 단 한번 상영인데도 불구하고 필름 순서가 바뀌어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20분 만에 상영이 중단되었다. 물론 그건 영화제 잘못이 아니다. 아마도 이전 이 영화를 상영한 영화제에서 무책임하게도 필름 권수를 바꿔서 넣었을 것이다(그건 영화제 프로그래머나 영사기사가 알 수 없다). 십여 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려던 나의 기대는 그렇게 포기되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11시에 재상영을 한다고 했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 시간에 남포동을 향하고 있어야 했다.

영화제라는 일시적인 축제, 갑작스러운 펼침. 그 안에서 선택이라는 즐거운 내기. 이를테면 나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을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스즈키 세이준의 전작 <피스톨 오페라>가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고 있는데 옆에 하얀 백발의 영감님이 노구를 이끌고, 코에 고무호스를 댄 채 작은 여행 가방을 안고 의자에 앉을 때, 하마터면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스즈키 세이준! 나는 막 도착한 스즈키 세이준에게 인사를 할 만큼의 용기가 없다. 우리 시대에 루이스 브뉘엘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름. 하지만 나는 아무리 존경하는 감독이라도 (내가) 좋아하지 않은 영화를 응원할 생각은 없다. 그건 차라리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그래도 나는 거의 지친 표정으로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스즈키 세이준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건 그의 기기묘묘하고도 요염한 괴작(怪作)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기꺼이 존경심을 안고 이 영화를 보았다. 어떤 수를 써도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화. 특히 마지막 30분, 밤마다 아오치의 집에 죽은 나카사고의 유품을 하나씩 돌려달라고 찾아오는 그의 아내의 세번의 방문.

허우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를 추억하다

<쓰리 타임즈>

영화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재미는 그 영화들을 보기 위해 시간표를 짜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수많은 영화들, 사방에 흩어진 점, 말 그대로 우글거림. 그 사이에 선을 그어서 그 안에서 비전을 끌어내고, 그런 다음 그 안에서 자기의 상상과 사유를 발전시키는 것은 온전하게 자기의 몫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선은 당신의 예술적 비전이다. 저 더할 나위 없는 카오스 모스. 당신의 영화적 선의 각도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당신이 그려내는 상상의 영화적 지도, 보르헤스적 곡선? 이를테면 디팍 쿠마란 메논, 아우그스 타미요 산 마란, 비암바수란 다바아. 당신이 무질서하게 세워놓은 영화의 층과 계단들, 카프카적 직선? 이를테면 일리아 크로자노프스키, 미란다 줄라이, 크리스티 푸이유. 영화의 기억을 따라가는 당신의 여행, 프루스트적 점선? 이를테면 이만희, 혹은 쑨유, 리트윅 가탁, 레스터 제임스 페리어스. 말하자면 올해 내가 본 영화들(중의 몇편).

이 글은 영화에 취해서 쓰는 글이다. 말 그대로 전영객잔. 그러므로 나는 지금 취기에 잠겨 ‘어떤 인상’을 쓰는 중이다. 어떤 영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볼 기회가 없었고(이마무라 쇼헤이의 <신들의 깊은 욕망>), 어떤 영화는 하여튼 남들보다 먼저 보고 싶었다(허우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 다행히 그 영화들을 놓치지 않았고, 그런 다음 몇명의 새로운 이름들과 만났다. 허우샤오시엔은 그의 열다섯 번째 영화에서 더 밀고 나아간다. 세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먼저 1966년 ‘연애몽’(戀愛夢)을 보여준 다음 한참을 거슬러올라가서 1911년 ‘자유몽’(自由夢)을 꿈결처럼 펼친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와서 처음 시작한 시간을 지나쳐서 2005년 타이베이를 무대로 ‘청춘몽’(靑春夢)을 그린다. 한편으로는 <동년왕사>의 후일담과 <해상화>의 무성영화적 버전, 그리고 <밀레니엄 맘보>를 리믹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의 역사를 일상생활의 연애의 연대기로 따라간다. 이 영화의 핵심은 사실 사운드디자인에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유행가의 신파적 낭만, 혹은 거기에 담겨 있을 추억과 사연의 시간을 휘저은 다음 바라보는 영화를 갑자기 우리로부터 떼어놓고 그 안에서 (자막을) 읽고 (선율을) 듣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사운드의 미메시스에 기댄 다음 장면을 병풍처럼 펼친다. 그 안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세 번째 이야기에서 사운드는 앰비언트가 된다. 단지 그것이 테크노여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운드는 음악이자 대사이며, 유일하게 소통하는 휴대폰의 호출처럼 그들을 불러내는 소통이자 테크노 풍경이다. 그냥 한마디로 이 영화는 굉장하다.

<브로큰 플라워>

올해 영화제에 온 시네필들 사이에서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에 대해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경지이다. 그는 여전히 로드무비를 만들고 있지만, 내가 놀란 것은 아,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영화의 서사가 성립될 수 있다는 어떤 쇼크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자무시는 이 안에서 어느 지점까지 간 다음 갑자기 영화를 멈추고는 자꾸만 영화를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시작한다. 그때마다 영화는 계열을 옮겨가면서 던져진 세계를 다시 구성하고, 그 안에서 다시 수렴한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다음에 올 수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그의 미국 삼부작 중 두 번째인 <만달레이>에서 <도그빌>을 그냥 반복한다. 이미 본 것들이고, 충분히 예상한 대로 이야기는 흘러가고, 마지막에 그레이스가 다른 지역으로 도망친다는 에필로그를 보면 이 지겨운 이야기의 다음이 또 있단 말이야, 라는 한숨이 나온다. 라스 폰 트리에는 자기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그리고 그는 대사를 못 쓴다. 그가 테크닉이 넘쳐나는 영화를 찍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연극무대처럼 만들어놓고 오직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로 펼쳐 보이자 그게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는 희곡을 더 읽어야 한다).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보고 있으면 너무 슬퍼서 목이 메이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르덴 형제는 <약속>에서 보여준 감흥을 넘지 못하고 있다. <로제타>는 그보다 못했고, <아들>은 <로제타>보다 못했고, <더 차일드>는 <아들>보다 못하다. 미카엘 하네케는 <히든>에서 다시 한번 퍼즐 놀이를 한다. 그게 재미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퍼즐은 좀더 노력을 해서 더 비틀어야 했다. 하지만 차이밍량의 <흔들리는 구름>은 그가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슬퍼하는 시네아스트인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우스꽝스러울수록 황량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섹스를 하는 장면은 스산한 인상을 안겨준다. 종종 형광등 조명 아래 찍힌 푸른색은 세상의 창백한 표정을 보여주고,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장면은 처연한 열정을 담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차이밍량이 지난 여름 서울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누군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차이밍량은 잠시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인류 평화와 지구의 안전을 위해 고민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으면 예술영화입니다.” 이보다 더 적나라하고 맹렬한 자기 자신의 고통에 대한 고백이 어디 있단 말인가?

<더 차일드>
<흔들리는 구름>

주목! 에릭 쿠의 <나와 함께 있어줘>

나는 올해 부산에서 적지 않은 새로운 이름의 영화를 보았다. 그중에서 어떤 영화들은 나를 실망시켰고(도대체 부산에 어떻게 온 거야!), 하지만 몇몇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에릭 쿠의 <나와 함께 있어줘>는 정말 내 심금을 울렸다.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처럼 진행되고, 혹은 폴 오스터의 소설처럼 에피소드를 끌어내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거의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선 세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병든 아내를 여의고 혼자 남은 할아버지의 일상. 그에게는 아무 사건도 없다. 단지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가게를 돌보는 것이 전부이다. 가끔 어른이 된 아들이 찾아오면 음식을 차려준다. 그런데 그의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이다. 그는 아내가 죽자 더이상 요리를 맛볼 상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 뚱뚱하고 못생긴 사내는 건물의 보안 직원이다. 그는 폐쇄회로에서 한 여인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 우아하고 세련된 여인은 그것을 알 리 없다. 집에서 아버지는 그를 구박하고, 그의 형은 침대에서 자지만 그는 마루 소파에서 자야 한다. 근무 중에 졸던 그는 해고당하고, 그는 그 여인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가까스로 그 편지를 완성한 그는 편지를 부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세 번째 이야기. 소녀는 인터넷 채팅에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상대를 알게 된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그들은 서로 만나서 함께 영화를 본다. 영화관에서 “나와 함께 있어줘, 영원히”라는 대사가 나올 때 상대는 그녀의 손을 쥔다. 그러자 그녀는 그녀의 어깨에 기댄다(나는 그를 그녀라고 잘못 쓴 게 아니다). 둘은 키스도 하고, 함께 잠도 잔다. 하지만 소녀는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자기를 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버림받은 소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나와 함께 있어줘>

우선 이 영화의 놀라운 점, 이 영화는 이 세 가지 이야기의 대사가 모두 합쳐서 20개가 채 되지 않는다. 거의 무성영화를 방불케 하며 진행되는데, 그 침묵은 이들의 외로운 고통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두 번째, 이 영화는 각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음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병렬 진행된다. 어떻게? 이것이 이 영화의 마술이다. 여기에 테레사 챙이라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더해진다(영화 소개에 의하면 테레사 할머니의 이야기는 실화이고, 그녀는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한다). 그녀는 어려서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멀었고, 그런 다음 왼쪽 눈을 실명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오른쪽 눈도 잃는다. 이제 귀가 멀고 눈도 먼 그녀는 삶을 거의 포기한다. 그런 그녀에게 세상 저쪽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점자를 익히고, 그 다음에는 영어를 배워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 그녀에게 안겨준 고통의 너비, 슬픔의 두께(그녀는 청력과 시력을 잃기 전 광둥어만 알고 있었고, 영어를 전혀 못했다고 한다. 청력과 시력 없이 외국어를 배우다니!). 그런 다음 그녀는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결심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침묵, 그러니까 대사도 거의 없으며 대부분 화면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이 모든 세상의 중심에 테레사 챙을 놓고 그녀의 자리에서 싱가포르의 일상생활 안을 내려다본다는 뜻이다. 나는 영화가 충분히 말을 할 줄 아는데도 말하지 않을 때, 그 이유를 내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 영화의 예술적인 허영이 역겨워진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나 에릭 쿠의 침묵은 보는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할 줄 아는 이들의 장면에서는 침묵을, 그리고 테레사 챙의 장면에서는 자막으로 진행할 때, 거기서 나는 세상을 구성하는 한 사람의 절대적인 방식, 그녀 앞에 던져진 운명의 규칙, 그 안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그 불편함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진행하는 그 지극정성의 이해의 태도, 영화의 감각을 테레사 할머니와 똑같은 방식으로 열어놓고 그 영화적 신체 안에서 그녀의 세상을 향해 열려진 태도를 받아들이는 간절함이, 영화를 보는 내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세 가지 이야기와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는 갑자기 하나로 겹쳐진다. 마지막에 테레사 챙은 말한다. 1966년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지만 그해 크리스마스 그는 코암으로 죽었다. 테레사는 그때 자기에게서 사랑이 떠났으며, 아직까지 독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녀는 이제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한다. 그런 다음 타자기로 마지막 문장을 친다. “나와 함께 있어주세요, 사랑하는 사람. 그러면 내게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올해 내가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 첫 번째 영화, 혹은 어쩌면 마지막 영화. 이 영화만으로도 올해 부산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나는 당신도 부산에서 행복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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