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하 <내 생애>)에 이어 이번주는 <새드무비>다. 가을이 전형적인 멜로영화 강세기임에는 틀림없지만 한달 이상 멜로 열풍에 휩싸인 극장가도 참 오랜만이다. 대부분의 주요 예매사이트에서 예매율 1위를 차지한 <새드무비>는 일단 박스오피스 1위를 점찍어놨다. 하지만 전통적인 극장가 비수기에 비슷한 멜로풍의 대체재도 많아, 기존 개봉작들을 월등히 뛰어 넘을 흥행기록을 세울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내 생애>가 일곱커플의 사랑이야기를 펼쳐 놓은 것처럼 <새드무비>도 네커플을 한꺼번에 불러 모은다. 게다가 커플의 주인공들이 정우성, 임수정, 차태현, 손태영, 염정아, 신민아, 이기우 등이다. 일단 영화의 속내를 보기전에 시작부터가 끌리는 설정이다. <내 생애>가 해피엔딩을 위해 중반 이후 배우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과 달리, <새드무비>는 정해진 이별을 향해 달려가 결국엔 직면하게 될 인생의 상처를 응시한다. 영화의 주조는 ‘새드’하지만, 여기엔 소소한 웃음을 주는 장면들도 양념으로 첨가되어 있다.
같은 멜로 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어도 <내 생애>가 결국엔 하나의 앙상블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면, <새드무비>는 커플간의 관련성과 내러티브의 통일성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찌보면 독립적인 네개의 에피소드를 붙여 놓은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설정 자체가 관객에게 거리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커플의 에피소드가 응집력있게 선명히 다가오지 않는다면 자칫 영화 자체가 듬성듬성하게 보일수도 있다. 소방관으로 변신한 정우성과 수화 통역사로 출연한 임수정을 비롯, 누가누가 잘우나 비교해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 스토리는 예정된 수순을 따라 안전하게 흘러가도 ‘슬픈 영화’답게 몇몇 장면들은 매우 ‘짠’하다.
<새드무비> 외에도 몇편의 신작이 함께 찾아온다. <일 포스티노>의 마이클 래드포드가 감독하고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조셉 파인즈가 주연한 세익스피어 원작의 <베니스의 상인>은 극장가에 흔치 않은 고품격 시대물이다. ‘원작을 어떻게 해석했나’, ‘원작과 비교해서 어떤가’를 굳이 따지지 않고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빠지는게 즐거운 관람방법일듯 싶다. 동굴 속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SF 액션 <케이브>, 프랑스산 액션영화로 미국 흥행 1위에 오른바 있는 <트랜스포터 엑스트림>도 멜로에 싫증난 액션팬들을 손짓한다.
씨네필들을 흥분시킬만한 두편의 예술영화도 ‘조용히’ 걸린다. 하이퍼텍 나다와 상암 CGV에서는 허우 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가, 필름포럼(구 허리우드극장)에서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가 개봉된다. <카페 뤼미에르>는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대만의 거장인 허우 샤오시엔이 만든 오마주 영화다. ‘오마주’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거장은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의 생뚱맞은 풍자와 해학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필름포럼으로 발길을 돌리자. <과거가 없는 남자>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 중에서도 ‘제일 골때린다’고 평가받는 코미디 영화다.
매주 몇편의 신작들이 꾸준히 몰려와도 멜로바람탓에 상위 몇편만 제대로 개봉 존재를 알리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신작중 <새드무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도 안되는 예매율로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어 이번 주말 극장가도 <새드무비>, <내 생애>, <너는 내 운명> 등 3편의 멜로 영화가 관객의 발길을 잡는 멜로강세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