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위노라 라이더, 비디오 비평 ‘알바’ 가 맺어준 인연
2005-10-20
위노라 라이더

1991년 어림은 정말 영화에 파묻혀 산 시간이었다. 그 시절은 막 극단에 들어가서 연극을 한다 어쩐다 열심히 쫒아 다니던 때였는데, 그야말로 한 달에 세종대왕 한 두 장조차 손에 쥐기 힘들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늘 달고 사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이수인 선배가 환한 얼굴로 와서는 영화도 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기가 막힌 알바가 생겼다면서 신청자를 받겠다는 것이다. 비디오 한 편에 원고지 5매 정도 평만 쓰면 된다는 선배의 말은 사뭇 복음이었다. 극단에서 너도나도 신청자가 쇄도했고 신청자 중에서 필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필자로 선정(?)되었다. (그 중엔 지금은 스타가 된 정진영 선배도 있었다!)

하지만 일은 정말 어려웠다. 욕심껏 분량을 할당 받아오긴 했는데 비디오를 하루에 10편 넘게 봐야하는 것은 육체노동이었다. 게다가 본 영화에 대한 상큼발랄한 평가를 원고지 5매 안에 구겨 넣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평론쓰기 숙제였다. 그래도 돈 쌓이는 재미에 눈이 시뻘개지도록 비디오를 보며 며칠은 착실했는데 난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 배우 때문에 나머지 비디오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영화는 <열정의 록큰롤>이란 촌스러운 제목을 달고 있어서 처음엔 무시하고 뒤로 미뤄뒀었는데, 어머나! 그 섹시한 피아노 사운드에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온 몸과 엉덩이까지 동원해서 피아노를 쳐 대던 그, 데니스 퀘이드의 연기도 압권이었지만 난 그의 어린 신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천사같기만 한 명징하고도 새콤한 그녀는 첫날밤 장면에서도 순진무구하기만 했다. 미성년자의 성행위 묘사라고 해서 극장 검열에서 잘려나간 부분을 저주하며 그 소녀의 귀엽기만한 눈웃음에 헤죽대던 나는, 그 순간 그녀의 골수팬이 되고 말았다. 그 가슴설레는 새침함이라니! 그녀의 이름은 위노라 라이더였다.

김성수 극작가

데뷔작인 <비틀쥬스>에선 검은색이 황홀하리만큼 잘 어울렸고, <가위손>에선 그야말로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소녀였다. <헤더스>나 <청춘 스케치>에서는 반항기 가득한 고등학생으로 나와 그야말로 폭발하는 젊은 열기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그녀가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는 듯 보였다. 눈에 번진 마스카라에서도 세파나 풍상을 읽을 수 없었으며, 그저 그녀의 무구한 영혼이 놀라운 치유력으로 사춘기의 아픈 정서적 상처들을 치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순수의 시대>와 <아메리칸 퀼트>에선 그녀의 열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성숙해가는 여인의 향기가 가슴을 더욱 설레게만 했다.

그녀가 도벽이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천형과도 같은 배우라는 직업에서 기인하는 스트레스라고 믿고 싶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여전히 나는 무구한 그녀의 영혼을 스크린에서 만나길 기원한다.

김성수(극작가, 연출가, 예술극장 나무와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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