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멀더, 데이비드 듀코브니를 말하다
2001-08-01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안녕하세요. 난 폭스 멀더예요. 그리고 이쪽은 내 파트너 스컬리… 아, 아니군요. 이번 여름 시즌엔 파트너가 바뀌었어요. 아이라, 스스로를 소개해줄 수 있나요? 예헤! 그럼요. 난 아이라 케인이고 한때는 정부 소속 과학자였지만 지금은 애리조나 지방대학에 처박혀 모든 학생들에게 A를 선물하는 한심한 생물학 교수로 일하고 있죠. 항간에는 냉소적이면서 지적인 멀더가 어쩌다가 나같이 속없는 놈이 되었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이건 전적으로 듀코브니, 그가 원하던 바라고요. 맞는 말이에요.

물론 듀코브니는 나, 멀더를 처음 만난 이후 오랫동안 멀더의 내면 깊숙이까지 연구해주었고 그 누구보다 나를 휼륭히 표현해주었어요. 6번째 시즌 중 <할리우드 A.D.>를 비롯해 5∼6개의 에피소드들은 그가 직접 각본이나 연출을 맡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X파일>과 멀더를 헐값에 팔아 넘겼던 폭스사와의 마찰이 있기도 했고, 사실 8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당신의 팬이에요’라고 말해. 그리곤 ‘스컬리는 어디에 있죠?’ 묻곤하지.” 그는 자신을 오로지 멀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증오했고 다음 영화에선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되길 원했어요. 아마 <고스트 바스터즈> 같은 코미디를 만들었던 아이반 라이트먼이라면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흔쾌히 출연을 결심하고 집에 돌아와 <에볼루션>의 시나리오를 읽는데 “이런, 또 ‘외계인’이잖아”라고 했다더군요. 물론 ‘빌어먹을 외계인’(Aliens be Damned)에서 ‘외계인을 엿먹여라’(Damn the Aliens!)로 바뀌긴 했지만…. 난 <에볼루션>을 찍으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완벽주의 FBI요원 ‘스털링’ 아니라 실수투성이 줄리언 무어의 ‘찐한’ 눈빛을 거부할 필요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멀더, 당신은 스컬리와 키스 한번 하는 게 진화된 공룡 100마리 죽이는 것보다 힘들지 않았나요? 듀코브니가 사실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아이라, 물론,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죠. 한때 <선>지에서 그를 ‘섹스 중독자’라고 썼던 적도 있고 포르노 배우나 몇몇 여배우들과 끊임없는 스캔들을 뿌리긴 했지만 그 모든 ‘소문 혹은 진실’들은 테아 레오니와의 결혼 이후 잠잠해졌어요. 게다가 그는 <X파일>의 촬영지를 극구 캐나다에서 아내에게서 가까운 LA로 옮길 만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죠. 이제 2살된 딸 매들레인과 <쥬라기 공원3>로 나란히 여름극장가에서 만난 아내 테아를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요. 음…, 사실 그에게 모범생의 피가 흐른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명문 프린스턴을 거쳐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한 그에겐 늘 ‘똑똑한’이란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했고 멀더를 연기하는 데에 그 출신은 더할나위없이 휼륭한 백그라운드가 되긴 했지만, 그는 “난 사람들이 ‘너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니?”라고 묻는 게 좋아”라고 말하더군요.

그런 바람이 그를 냉철한 직감이 아니라 비듬샴푸로 외계인을 물리치는 귀여운 과학자로 만들기도 했고 벤 스틸러가 감독하는 코미디 <줄랜더>(2001)의 출연을 부추기기도 한 것 같고…. 멀더, 듀코브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군요. 글쎄요. 나도 그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어요. 나 역시 8년 동안 그 안에 살았지만 듀코브니, 그에 대한 진실은 저 너머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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