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이것이 진짜 다큐멘터리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05-10-26
글 : 김수경
제5회 인디다큐페스티발 10월28일 막올려
<안녕, 사요나라>

독립다큐멘터리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다섯 번째 축제가 열린다. 오는 10월28일부터 11월3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와 필름포럼 2관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이번 인디다큐페스티발의 개막작은 김태일·가토 구미코의 공동연출작 <안녕, 사요나라>이다. <안녕, 사요나라>는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처음 만난 한국인 이희자, 일본인 후루카와가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동참하는 과정을 따라나선다. 이희자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태평양전쟁으로 잃었다. 오랜 추적 끝에 그녀는 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전쟁에 목숨을 바쳐 신으로 봉인)된 사실을 알게 된다. 핑퐁처럼 오가며 이희자와 후루카와의 개인적 삶을 넘나들던 카메라는 역사적인 배경에 질문을 던지며 의미를 확장한다. 야스쿠니 신사의 배경과 사회적 의미, 나카소네나 아베 같은 정치 거물들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행적과 연관성이 일본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덧붙여진다. 후반부를 향할수록 카메라는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양국의 양심적인 개인들에 집중한다. 야스쿠니 신사 반대투쟁을 벌이는 일본의 젊은이에게 이희자가 격려를 건네는 순간은 작지만 빛나는 희망을 엿보게 한다.

국내신작전에는 총 61편의 작품이 응모하여 장편 13편, 단편 7편으로 추려진 20편의 국내다큐멘터리가 포진됐다. 서동일의 <핑크 팰리스>는 장애인의 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첫머리에 신문기사를 통해 등장한 48살의 동수 아저씨는 친근하게 사랑과 성을 이야기하는 인터뷰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동수아저씨가 내뱉은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해. 에이 더러워 ”라는 오래된 숙원에 대한 겸연쩍은 표현과 전동 휠체어에 앉아 홍등가를 맴도는 그의 뒷모습은 미묘한 울림을 남긴다. 김현경의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는 분단으로 인해 52년간 남편을 기다리던 두 할머니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그들과 재회하는 사건을 포착한다. 거기에 감독 부모님의 삶이 중층적으로 배치된다. 연출자가 할머니에게 심경을 고백하며 오열하는 장면처럼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간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정서가 인상적이다. “부모님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는 내레이션에 단호히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카메라 안과 밖의 감정을 넘나든다. 여성 빨치산과 정치범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한 김진열의 <잊혀진 여전사>, 파격적인 표현기법으로 현실정치와 미디어에 접근한 박홍렬·황다은의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도 포함됐다.

<핑크팰리스>
<먼지처럼 떠돌다>

해외신작전에는 12편이 준비됐다. 중국 라오양을 배경으로 한 황웬하이의 <먼지처럼 떠돌다>는 극영화를 연상시킨다. 암울하고 푸른색의 화면에서 등장인물들은 시종일관 카메라가 없는 듯 움직인다. 처음 마작클럽 주인 홍웨이를 등장시키며 카메라는 마작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때 마작은 욕망보다는 일상의 무기력함을 상징하는 습관처럼 느껴진다. 21살의 소녀 왕롱이 낙태수술 뒤 밤거리를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이나 전직경찰관 라오시에를 포함한 사람들이 폭탄주를 마시며 털어놓는 회고조의 불만은 자본주의 앞에 소외당하는 중국 소시민의 처연함을 실감하도록 한다. 수잔 스턴의 <자립형 인간>은 행복한 가족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홈비디오의 파편과 아버지 밥 스턴의 높은 톤의 내레이션이 공존한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밥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는 셀프인터뷰로 자신의 마음을 가족에게 남기려 한다. “자립형 인간은 미국의 영웅”이라고 믿던 아버지의 자살을 통해 감독의 질문은 가족사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로 옮아간다. 체첸전쟁에 휘말린 아이들을 다룬 <우울한 방 세 개>는 객관적인 사실의 입증보다는 감정과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 롱테이크를 중심으로 한 절묘한 미장센과 음악은 예술영화에 버금가는 유려함을 보여준다.

<안녕 평양>
<슬로브핫의 딸들>

높은 10대 임신율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정치 성향인 텍사스주 러벅을 배경으로 한 <쉘비 녹스의 교육: 섹스, 거짓말, 그리고 교육>은 동명의 15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가 성적 자유를 위해 캠페인에 나서면서 운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양영희의 <안녕, 평양>은 조총련 간부이자 세 아들을 북송시킨 아버지와 딸인 감독의 가족관계를 통해 한국 현대사 문제를 파고든다. “처음에는 무작정 캠코더를 사서 평양을 방문했다. 주석궁에서 매뉴얼을 읽으며 사용법을 익혀” 시작한 그녀의 촬영은 이후 20년간 지속됐다. 이번 영화제는 11월1일 오후 6시에 양 감독과 <송환>의 김동원 감독의 특별대담도 마련했다.

아프리카의 검은 눈물을 찍는다

카메룬 출신 장 마리 트노 감독 특별전

<아프리카 벗겨먹기>

제5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카메룬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영화인 장 마리 트노의 작품을 특별전으로 선보인다. 1980년대부터 프랑스와 카메룬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장 마리 트노는 카메룬 내부의 시각으로 자기반영적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그는 현재의 카메룬의 모습을 간결하게 촬영하고, 과거 정치적으로 이용된 기록필름들을 조합한 뒤 주관적인 성격이 강한 내레이션을 덧붙인다.

<식민지에 대한 오해>는 독일 선교사 하인리히 베다의 행적과 유럽인들이 갖는 아프리카에 대한 시각의 한계를 지적한다. 열정적으로 종교를 전파했던 유럽 선교사들은 의도를 훼절당한 피해자인 동시에 산업혁명을 전도한 가해자였다. 아프리카인들은 그 대가로 영혼과 문화를 잃어버린다. “잔인한 도시 야운데”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아프리카 벗겨먹기>는 아마두 아히조, 폴 비야로 연결되는 카메룬 군부 독재와 그로 인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보여준다. 요인 납치, 신문 폐간, 시위대의 죽음 등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지고 그것의 역사적 배경에는 19세기부터 시작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배가 있다. 장 마리 트노는 “과거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며 문학, 언어, 역사의 소멸로 카메룬은 정신은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구름 위의 머리>은 카메룬 현대사회의 고단함을 그린다. 공무원, 구직 실패 뒤 장사를 하기 위해 사설은행을 찾아가는 대학졸업자, 슬럼아트 예술가를 통해 ‘쉽게 나아지지 않는 삶’을 포착한다. 장 마리 트노는 영화제의 일환으로 미디액트에서 10월27일부터 3일간 열리는 제작워크숍에서 참가자들과 동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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