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외화가 20편을 넘지 못하고, 노동절이나 국경절과 같은 황금연휴를 겨냥한 영화메뉴도 국산영화 일색인 중국 영화시장은 언뜻 세계 영화의 흐름에 둔감한 듯 보이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영화소식과 세계 각국의 영상물을 복제해 판매하는 해적판 시장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칸, 베니스, 베를린영화제는 물론 미국의 에미상과 MTV영화상까지 생중계하는 중국 국영방송 <CCTV6>에서는 지난 10월10일, 이례적으로 30분에 달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중계방송을 특집 편성했다. 물론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의 특수성이 감안되고 영화제에 참가한 화어권영화와 영화인 위주의 취재 방송이었지만 아시아 최고의 국제영화제로서 자리매김한 부산영화제의 위상과 관객의 열기를 확인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뿐 아니라 언론 매체에서도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화어권영화와 영화인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는데, 두 차례의 상영회를 매진으로 기록하고, 한국 관객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관금붕의 신작 <장한가>에 대한 보도는 국경절연휴 직전인 지난 9월29일 개봉하여 연이어 개봉한 성룡의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과 유덕화의 <동몽기연>에 밀려 참담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중국에서의 결과와는 대조적으로 보인다.
대륙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중국 영화시장을 겨냥해 영화제작을 하고 있는 홍콩 영화감독들의 행보는 이미 한두해 전 일이 아니다. 동성애영화 <란위>로 대륙에서 영화제작을 시작한 관금붕은 보수적인 심의기관의 심기를 건드린 소재 때문인지 극장 문도 두드리지 못한 채 고배를 마셔야 했고, 4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장기인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여성영화를 들고 대륙 관객과 만나고 있다. 판매부수 50만부를 기록한 왕안이의 원작소설, 정수문, 양가휘, 후쥔 등 홍콩과 대륙을 망라한 호화 출연진과 베니스영화제 경쟁작 중 유일한 화어권영화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중국 영화시장 진출을 시도한 <장한가>에 대한 대륙관객과 매체들의 평가는 냉담하기 그지없다. 시종 원작소설과 비교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중국 매체 들의 부정적 평가와 ‘또 상하이냐’식의 수많은 상하이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에 익숙한 관객의 선입견까지 더해져 영화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장한가>의 실패원인 중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역성이 강한 영화에 배타적인 중국 영화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흥행감독으로 손꼽히는 펑샤오강의 동북지역색이 강한 초기작들도 남방지역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에 부정적 평가를 일관하는 이들도 미술감독 장숙평이 장식해낸 <장한가>의 시각적 매혹을 뿌리치긴 힘들었던 것 같다. <완령옥>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에 이은 관금붕의 절정에 이른 상하이 재현에는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홍콩 감독들의 중국 영화시장 공부는 좀더 긴 수업과정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