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가까스로 치유됐던 마음의 상처가 다시 재발했다. 2년 전 나에게 상처를 줬던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이고 그 아픔을 재발시킨 영화는 <사랑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나를 괴롭힌 건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반응들이 엄청나게 나를 기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혹자들은 이 말이 대충 무슨 뜻인지 이미 간파했으리라.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났을 때 나의 반응은 ‘괴상하기는 한데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잖아’였는데 주변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고, <사랑니>를 보고 났을 때 내 반응은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복잡하냐’였는데 며칠 뒤 <씨네21>에 ‘올해의 발견’이라는 대빵 큰 제목을 달고 기획기사로 등장한 것이다. 그 제목을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나의 고정 레퍼토리를 읊어댈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내 수준이 그렇지, 뭐….’
<씨네21>의 기획기사와 허문영, 김소영 평론가의 찬사 ‘연타’를 보면서 의기소침해진 내가 줏대없다고 생각하실 분도 많을 거다. 영화는 자기 소신대로 보는 거지 말야, 왜 남의 눈치보고 그러냔 말이지. 뭐 별로 틀린 말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터무니없고 파렴치한 줏대가 줏대없음보다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나의 무소신주의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변명하련다. 하여튼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니> 어떻게 봤냐고 물어볼 때마다 “어, 그게 말이죠, 저는 썩 재미있게 본 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며 대화를 종료시키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만 재미없게 봤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물론 이 영화의 유려한 리듬감이라거나 눈부신 빛의 미학을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낮은 영화적 식견이 정답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스스로를 위안할 만한 다른 이유를 찾아보니, 배우 김정은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김정은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군에 들어가는 연기자였다. 그러나 <루루공주>를 한두회 보면서 캐릭터를 선택하는 그의 안목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사랑니> 시사 직전 그가 일으킨 이른바 <루루공주> 사태를 보면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미운 털을 나도 모르게 콕 박아놓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인영이 이석을 집에 데려다줬다가 다시 올라와 현관문을 열고 이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는 순간 ‘어휴 또 눈 반짝반짝이야?’ 하면서 이후의 관람의욕을 상실했다. 배우의 사생활이나 연기 이외의 요소를 작품에 개입시키는 것만큼 어리석고 때로는 폭력적인 태도도 없지만 그날 내가 그랬다.
<사랑니>를 본 다음날, 사랑니 두개를 뺐다. 두 사건 사이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내가 메신저 대화명을 ‘사랑니를 뺐다’로 바꾸는 바람에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내가 이 영화에 감화받은 척하는 걸로 오해한다. 나, 눈치는 많이 보지만 그렇게 위선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리고 ‘올해의 발견’ <사랑니>, ‘올해(나)의 상처’라고 명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