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토리노국제여성영화제서 2등상 수상한, <산책>의 최지영 감독
2005-11-03
글 : 오정연
사진 : 오계옥
영화 덕에 엄마와 전국일주했다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정신지체를 겪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늘 신경 써야 하는 딸. 모녀는 서로를 늘 염려하고 때로 상처를 주지만, 결국은 말이 필요없는 소통의 순간을 경험한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딸에게 먹먹한 공감을 선사하는 영화 <산책>은 최지영 감독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담아 만든 작품이다. 지난 여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최지영 감독을 만났고, 영화에 담긴 진심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산책>이 토리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2등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디까지가 실제 경험인가.

=일단 엄마가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셨으니, 영화 속 엄마의 상태는 모두 진짜다. 물론 그 밖의 대부분의 디테일과 에피소드는 영화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어머니를 연기지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엄마 역할은, 배우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 하시겠다는 엄마를, 개런티 드리겠다며 섭외했다.(웃음) 연기는… 대사를 외우게 하거나 복잡한 주문은 불가능했다. 한컷에 한 가지씩만 목표를 설정했고, 대부분 딸이 엄마를 건드리면서 반응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복잡한 상황에선 연기가 꼬이기도 했지만, 그럴 땐 20, 30분 정도 쉬면서 편하게 하려고 했다.

-영상원 전문사에서는 편집을 전공하고 있다고 들었다.

=학부 전공은 영문학이었고, 극영화를 연출한 것은 <산책>이 처음이었다. 1999년 한겨레 영화제작학교 졸업작품으로 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2003년 미국 대학원에서 게이에 홈리스이면서 주지사에 출마한 남자를 다큐멘터리로 다룬 적이 있었다. 앞으로 연출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다큐멘터리도.

-마지막에 딸이, “내가 외할머니 닮았다더라.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날 봐라”라고 말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마지막 장면을 찍는 날, 예전에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찾아오신 친척이 날더러 외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실제로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세살 때 돌아가셔서, 엄마는 당신의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갑자기 생각난 상황이라서, 별다른 기대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했는데, 느낌이 좋더라.

-정동진에 어머니와 함께 왔던 모습이 좋아보였는데, 예전에도 어머니와 함께 자주 다니고 그랬나.

=그때는 우리 엄마가 20년 만에 기차를 타본 날이었다. 예전엔 엄마가 식당을 하시느라 어디 다니지도 못하셨는데, 영화 덕분에 부산에 정동진에, 전국을 투어한 것 같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기뻐하시던가.

=그냥 “그러냐”가 끝이다.(웃음) 상패에 내 이름이 써 있기는 한 거냐고 물으시더라. 선물로 토리노 특산품인 초콜릿을 사왔는데, 별로 맛도 없다며 시큰둥하시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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