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레이몬드 챈들러의 걸작 필름누아르, <이중배상>
2005-11-03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EBS 11월6일(일) 오후 2시

좋은 시나리오란 무엇일까. 매년 훌륭한 구성의 시나리오가 나오며 이를 영화화한 작품이 제작되지만 ‘좋은’ 시나리오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이중배상>은 고전 할리우드영화 중 탄탄하고 미묘한 구성, 그리고 시간 모티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자랑한다. 필름누아르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영화 <이중배상>은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시나리오의 매혹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드문 작품이기도 하다. 보험회사 직원 월터 네프는 디트리히슨이라는 남자의 보험을 갱신하러 그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디트리히슨의 아내 필리스를 만나고 남편을 살해할 음모를 품고 있는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월터와 필리스는 디트리히슨을 속이고 보험에 들게 한다. 기차 사고일 경우에는 보험금이 두배로 지급된다는 걸 알고 있는 월터는 디트리히슨이 기차로 여행을 떠나는 날, 그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이중배상>은 소설가로 알려진 레이먼드 챈들러, 그리고 감독인 빌리 와일더가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흥미로운 일화는 이들이 함께한 시간을 별로 유쾌하지 않게 기억한다는 것. 챈들러는 “고통스런 경험”이라고 털어놓았고 와일더 감독은 “그는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시나리오가 최고의 작업으로 탄생했음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영화는 월터 네프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는 어느날 밤,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는 돈 때문에, 여자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내용의 충격적 고백을 녹음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플래시백, 다시 말해서 시간을 거슬러올라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여자에게 홀려 범행을 계획하는 월터 네프, 그를 유혹한 여성 필리스, 그리고 월터의 회사 상사 키스가 얽히면서 감추어졌던 범죄의 전모가 실체를 드러내고 연인들의 사랑은 계획했던 살인 이후 곧 무너진다.

<이중배상>은 대사의 영화다. 필름누아르 장르 <말타의 매> 등에 비해 영화는 시각적 스타일에 의존하기보다 인물 대사로 내용을 끌어간다. 월터와 필리스가 주고받는 성적인 뉘앙스의 농담, “난 당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어. 바로 1분 전까지” 등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재치 넘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이중배상>은 운명론의 영화다. 주인공은 파멸하며 그의 여성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누군가가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이후 <선셋대로>(1950)과 <하오의 연정>(1957) 등의 장르영화를 만들어 성공을 맛보았지만 누아르의 향취를 선호하는 이에게 <이중배상>은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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