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가을날의 동화> 종초홍
2005-11-03
암울했던 대학시절 그의 얼굴에서도 ‘상실감’ 을 보았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쓸쓸한 냉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퍼진다. 늦가을. 나는 이 때가 가장 좋다. 계절의 변화란 ‘매직’과도 같아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기억은 쓰디쓸수록 짜릿하다. 그 쓴맛이 선명하게 남긴 흉터가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에 내려앉은 늦가을 이 즈음.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학교 앞 동시상영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내 도피행각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3년간 놓고 지내던 ‘보캐뷸러리(Vocabulary)’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도 갑갑했지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함께 통과했던 한 여자를 먼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극장의 간판엔 저우룬파(주윤발)과 중추훙(종초홍)이 있었다. 어줍은 솜씨로 그린 것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엔 쓸쓸한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답답했던 시절. <가을날의 동화>는 내 가슴을 절절히 파고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찾아 뉴욕으로 날아온 제니퍼(중추훙). 그에게 뉴욕의 가을은 잔인했다. 애인에겐 다른 여자가 생겼고 낯선 뉴욕은 그의 생채기를 자꾸만 건드린다. 어딘지 촌스러웠지만 인공적인 매력에 때 묻지 않은 중추훙의 얼굴은 참 예뻤다. 그 얼굴에서 내가 본 것은 바로 상실감이었다. 낯선 도시, 뉴욕의 빈민가. 별다른 희망 없이 ‘이민의 땅’을 부유하던 삼판(저우룬파)은 제니퍼의 상실감, 그 상실감의 ‘표정’과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니퍼를 향해 서서히 피어오른 그의 애정은, 그러니까 동질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무작정 미국 이민 길에 오른 홍콩의 청춘들과 내가 공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초반.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의 홍역을 치르고 난 대학 캠퍼스는 거대한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소련의 해체, 독일의 통일, 동구의 몰락…. 그 격변이 가져온 정신적 공황. 이제 곧 내가 편입돼야 할 사회에 대한 불안감. 그 희뿌연 시계(視界)가 자아내는 정체불명의 공포와 상실감을, 나는 제니퍼의 얼굴에서 봤다.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아니면 스치듯 내 마음을 긁어대는 낙엽 소리에 센티멘털했던 것일까?

정기영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그 날, 마치 ‘삼판’이 된 듯 제니퍼와의 엇갈린 사랑에 가슴을 치던 나는 <가을날의 동화>를 세 번이나 보고서야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친구를 불러냈다. 쓸쓸한데 소주 한 잔 하자고. 결국 소주잔에 쓸어 담은 건, 황량한 서울 거리와 숙취로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뿐이었지만….

가을바람이 가슴팍으로 훅 스며들면 생각나는, 제니퍼의 얼굴과 겹치는 또 한 명의 ‘내 연인’은 <첨밀밀>의 이요(장만위)다. 제니퍼와 이요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았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1986년 중국의 개방화 바람에 몸을 실고 홍콩으로 밀려든 소군(리밍)과 이요(장만위)는 10년 뒤, 뉴욕의 거리에서 이민자 신세로 재회한다. 그 날은 대만의 국민가수 등려군이 사망한 날. 이들의 쓸쓸한 모습 뒤로 등려군의 노래가 흐른다. 등려군의 죽음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10년 세월을 버텨온 이요의 청춘이 죽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소군과 이요는 잘 살았을까? 각자 따로? 서로 함께? 어느 쪽이든 그랬을 거다. 그들은 ‘상실의 시대’를 함께 살았고 그 상실을 대가로 인생을 얻었으니까.

정기영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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