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시작된 인터뷰가 30일 새벽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러브토크>(11일 개봉)의 이윤기 감독은 말했다. “아픔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절망도 쉽게 하지 않는다”라고. 보일듯말듯한 희망을 암시하는 것처럼 알듯말듯한 정혜의 미소로 첫 영화 <여자, 정혜>를 끝마쳤던 이 감독이 또다시 아프고 고독한 세 사람의 더 쓸쓸한 <러브토크>로 관객들을 찾은 것은 그래서인 것 같았다. 감독이 “사람들 속에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말 외로운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느껴보고,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러브토크>에는 상처를 간직한 채 서울을 떠나온 세 사람 써니(배종옥), 영신(박진희), 지석(박희순)이 등장한다. “마사지숍을 운영하는 써니는 성공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미국으로 가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러브토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학생 영신은 가정환경이나 본인이나 멀쩡하지만 과거에 집착하면서 자기 스스로 그림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애정은 있지만 그냥 싫어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석은 그런 사람”이라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세 사람이 과거를 잊기 위해 떠나온 도시는 로스앤젤레스다. 영신이 지석에게 “세상에 그 많은 나라와 도시가 있는데 어떻게 여기서 만나니”라고 말했던 것처럼, 왜 하필 엘에이일까. 감독은 “서울은 불행하든 어쨌든 너절한 인간관계라도 있는 도시인 반면, 엘에이는 노력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도시”라고 말했다. 마음을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서툴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 세 사람이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될 수밖에 없는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엘에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도 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써니가 라디오 디제이에게 조심스럽게 상처를 드러내기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단호한 어투로 상담해주는 써니가 유부남 애인과 사랑을 나눈 뒤 모텔방에서 멍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어둠 속에 갇히기에, 혹은 사랑하는 여자를 붙잡지도 못하는 지석이 겨울 강물 위를 부유하듯 굳은 채로 떠돌다 만난 옛사랑에게 “내 생각해 본 적 있어?”라고 쪼다같이 묻기에 가장 적합한 낯설고 쓸쓸한 공간으로 비친다.
감독은 이 아리고 스산한 영화에 대해 “여백을 많이 두었던 전작에 비해 수다스러운 영화가 됐지만, 아프지만 아프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다시 아프게 살게 될 소심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라는 점에서 <여자, 정혜>와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거나 내 주변의 누군가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감정이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러브토크>는 ‘대중적인 영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느낀대로 솔직하게’ 여러 번 볼수록 더 잘 보이고, 더 좋아지는 영화라는 점도 써달라”고 소심한듯 장난스레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