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섬소년, 섬소녀를 만나다, <파랑주의보> 거제도 촬영현장
2005-11-08
글 : 박혜명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차태현·송혜교 주연의 <파랑주의보> 거제도 촬영현장

수평선에 살짝 걸려 있던 해가 뚝 떨어졌다. 바다는 찬바람에 쓸리기 시작했지만 울창한 고목나무와 아늑한 평상은 매미 소리 우렁찬 여름밤 풍경을 연상시킨다. 거제도의 한적한 길목은 10년 전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로 더없이 어울린다. 고등학생 수호 역의 차태현이 바다처럼 맑은 파란빛의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끌며 타달타달 걷다, ‘이 바보!’ 하는 표정으로 제 머리통을 쥐어박더니, 파란 공중전화기를 발견하고 그 앞에 선다. 수호와 공중전화기 뒤로 걸려 있는 짙은 푸른색 바다, 저 멀리 떠 있는 어선들이 밝혀놓은 금색 조명들, 쌀쌀한 가을 기온에 굴하지 않는 푸른 나무. <파랑주의보>의 풍경은 그림 같다.

<파랑주의보> 현장의 조명부는 11명이나 된다. 차태현과 공중전화기 위로, 고목나무 뒤쪽 집 옥상으로, 그보다 먼 골목 끝집 옥상으로 조명부는 세 군데에 나뉘어 서정달 조명감독의 지시를 받는다. “앞의 건 됐어, 이제 뒤의 거!” 하고 조명 위치와 밝기를 조명감독이 무전기로 지시하자 고목나무 뒷집 옥상의 조명이 꺼진다. “뒤의 거 끄란 게 아니고 뒤의 거 조정하라고….” 동네 주민들과 구분이 안 될 만큼 넉넉한 인상을 풍기는 박희주 촬영감독과 서정달 조명감독이 너털웃음을 주고받는다. 색온도를 높여 화면을 화사하게 만들기 위해 공중전화와 고목나무 주변으로 수시로 물이 뿌려진다. 잠시 뒤, 생각보다 너무 화사해진 모양인지 스탭들이 다시 모래를 뿌린다. 정윤수 감독은 “뽀샤시한 화면요? 우리 그런 거 진짜 싫어해요. 최대한 촌스럽게, 생활감 묻어나게”라고 몇번을 강조한다.

전윤수 감독은 “순수한 소년 수호의 이미지에 딱 맞는 배우가 차태현 말고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파랑주의보>는 고등학교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거제도 올 로케이션으로 80%가량 진행된 촬영현장이 이곳 동네 주민들에게는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됐다. 슛이 들어갈라치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할 것 없이 서로서로 “쉿, 쉿” 하며 입을 모은다. 거제도에 유배당하다시피 석달을 산 스탭들도 여타 현장의 스탭들보다 예민함이 덜하다. 촬영 중인 길목으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제작부 스탭은 현장을 둘러싼 주민들에게 정말 죄송한 목소리로 “차 지나갑니다. 조금만 비켜주시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한다. 아침이면 문어를 잡고 저녁엔 고등어회를 쳐서 식탁에 내놓는다는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기름칠한 듯 매끄러운 목소리로 현장을 진행하는 감독이 있는 <파랑주의보> 현장은 10년간 간직되는 수호, 수은의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따뜻하다. 스크린 신고식을 치르는 송혜교와 예의 구김살 없는 소년의 형상 차태현은 촬영 중 짬이 날 때면 평상에 나란히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수다를 떨곤 했다. 외지인의 인적이 드문 거제도 앞바다에서 여름날 첫사랑의 기억을 소곤소곤 매만지는 <파랑주의보>는 올 크리스마스 개봉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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