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시간 넘게 천둥이 눈치만 살피고 있다. 스탭들도, 취재진도, 두살배기 말 천둥이가 콧김 불고 성을 내면 제 몸 사리기 바쁘다. 이미 오전 촬영 때 임수정이 말 뒷발에 채이는 것을 목도한지라, 방심하고 있다가는 무슨 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날 촬영은 2년 동안 헤어졌던 시은과 말 천둥이가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 계속되는 NG 끝에 천둥이는 십여분 휴식을 얻었지만, 양이 차지 않는지 계속 히힝거리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속되는 취재진의 셔터소리 때문에 연기에 집중을 못하겠다는 천둥이의 항변인지도 모른다. 맘 떠난 천둥이를 정한 자리에 다시 불러세우기도 쉽지 않다. 500kg에 달하는 천둥이를 카메라 앞에 두기 위해서 장정 네명이 온 힘을 다해 밀어붙여야 한다. “천둥이, 밥 주지 마!” 상대배우 임수정을 걷어찬 벌을 줘야 한다고 엄포를 부리던 이정학 PD. 혹시 영민한 천둥이가 알아듣고서 촬영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큼지막한 돌을 치우고 있다. “천둥이가 다칠까봐요.”
기수가 되고 싶은 소녀 시은과 경주마 천둥이의 교감을 그릴 영화 <각설탕>은 동물이 ‘주연배우’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말이 사람이 아닌지라 하루에도 수십번 참고, 또 참고 그래야죠.” 목장주의 딸로, 엄마없이 자라다 비슷한 처지의 천둥이를 만나 의지하는 시은 역의 임수정은 현장에서 최고 상전은 감독도, 자신도 아닌 바로 천둥이라고 전한다. 조련사와 함께 천둥이와 리허설을 하지만, 천둥이의 심사가 비틀리면 사전 약속은 무용지물. 그래도 임수정은 “제 감정이 흐트러져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제는 참을 만해요. 천둥이 기분 맞추다보면 리액션이나 순발력이 느는 것 같기도 하고”라고 상대배우를 감싼다. “감독 입장에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죠. 수정이 감정보다는 아무래도 천둥이 기분에 따라 촬영이 진행되다보니….” 그래선지, 이환경 감독은 임수정에게 “지금보다 10원어치만 좀 밝은 느낌으로!”라는 식으로 농담 섞인 주문을 내놓는다. 천둥이와 시은이가 우정을 나누는 제주도 장면은 다소 서정적인 톤으로, 시은과 천둥이 인마일체(人馬一體)로 경주에 나서는 과천장면은 “거칠고 스펙터클하게” 찍을 계획이라는 게 제작진의 귀띔. 현재 30% 촬영을 진행했으며, 내년 4월 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