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牛島), 아니 풍도(風島)다. 바람이 어찌나 세찬지 숨을 고르기조차 어렵다. 스탭들도 온몸을 꽁꽁 감쌌다. 한 무리의 스탭들은 해안 절벽에 걸어둔 지미집 카메라가 날아갈까봐 꼭 붙들고 서 있다. 가벼운 차림의 취재진만 오들오들, 속수무책이다. 성난 바람 때문에 취재를 위한 귀동냥도 불가능하다. 제작진들도 거의 수화에 가까운 몸짓을 주고받으며 오후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우도공원에 마련된 <연리지> 촬영현장. 악천후에 가장 애를 먹는 건 최지우, 조한선 두 배우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찬바람 맞으며, 짠 눈물 흘려야 하는 고통을. 하지만 두 배우는 만나자마자 깔깔이다. 도대체 무슨 밀담을 나눈 것일까. 김성중 감독까지 가세해서 뭔가를 주문하는데, 강풍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이들의 대화를 코발트빛 바다로 날려버린다. 하지만 악천후가 마지막 장면 촬영에 나선 두 배우의 감정까지 잡아먹진 못한다. 어렵지 않게 아껴뒀던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고 닦길 반복하는 걸 보면.
“청승맞은 역은 아니에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뒤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혜원 역의 최지우는 “아프다고 해서 가라앉아 있는 인물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밝은 여자”라고 설명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지만, 병원을 제집처럼 여기며 온갖 소동을 벌이는 아가씨라고. “드라마에서 멜로는 많이 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코다쳤어요. 감정을 잡고, 또 그걸 유지하는 게 쉽지 않던데요”라는 게 촬영 종료를 눈앞에 둔 최지우의 덧말. 수많은 여자친구를 스토커로 몰거나 유학간다는 거짓말로 떼내다 혜원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바람둥이 민수 역의 조한선은 “모든 걸 쉽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플레이보이”라면서 “전작인 <늑대의 유혹>은 또래끼리 연기해서 그런지 편했는데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해서 조심스러웠다”는 소감을 남긴다.
<연리지>로 데뷔하는 김성중 감독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애초 제주도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막상 직접 와서 보니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궂은 날씨를 감수하면서도 우도를 주요 촬영지로 선택했다”면서 김 감독은 “쿨한 멜로영화가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두 가지가 한몸을 이룬다는 나무 연리지(連理枝)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영화는 이미 일본 포니캐넌에 350만달러를 받고 판매된 상태다. 지우히메를 보기 위한 30여명의 일본 취재진도 이튿날 연리지 취재에 나섰다. 과연 이 두 사람의 사랑은 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내년 1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