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케이 픽처스가 명필름 시절부터 오랫동안 영화화를 준비해온 노근리 사건이 연극연출가인 이상우(54·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씨의 연출로 내년에 영화화 된다. 연우무대와 극단 차이무 등을 이끌어온 이상우 교수는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중견 연출가로 <노근리 전쟁>(가제)은 그의 영화감독 데뷔작이 된다. 내년 여름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이 영화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김민기씨(극단 학전 대표)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며 연극원 동료인 윤정섭 교수가 미술을, <그때 그 사람들>의 김우형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는다. ‘노근리’라는 소재가 주는 화제성 못지 않게 연우무대 시절의 동료이며 대학로 터주대감인 이상우와 김민기의 스크린 속 재회라는 사실만으로도 시선이 모아지는 프로젝트다.
“영화 연출 제안을 받은 적은 몇번 있어요.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쓰면 철학책 보는 것같다, 너무 어렵다는 말을 듣곤 했죠. 연극판에서는 나보고 가볍다, 웃기다고 하는데 왜 영화판에서는 무겁다고 하는지(웃음) 그냥 (영화는) 내 것이 아닌가보다 생각하면서 시간이 흐른 거죠.”
연우무대 동료였던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 <미인> 등의 각본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2년 전 시나리오 작가로 노근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소재의 무거움과 주제의 예민함 탓에 난항을 겪던 감독 선정이 그의 수락으로 최근 마무리됐다.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대학로 최고의 블랙코미디 작가 답게 당시의 악몽같은 사건을 지켜 보는 초등학생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실화가 주는 중압감을 비껴갈 생각이다.
“아이들이 많이 등장해 그네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예요. 올 겨울에 열살 남짓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해서 겨울 방학 내내 시골 분교같은 데서 함께 지내며 카메라에 익숙해질 정도의 훈련만 하고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예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나 <집으로 가는 길>을 찍는 느낌으로 가려고 합니다.” 문성근씨 등 그와 오랫동안 함께 연극밥을 먹었던 배우들이 아이들의 부모로, 할머니, 할아버지같은 ‘조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그의 감독직 결정을 듣고 이창동 감독은 “왜 그 고생을 하려고 하냐”는 핀잔을 줬다고 한다. 대학로에 쌓은 명성을 두고 굳이 ‘신인 감독’을 자처한 그에게 불안감이나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해도 세월이 가고 안해도 세월이 갈 테니 그냥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게 그가 내놓는 담백한 출사표다.
<노근리 전쟁>은 이 감독을 비롯해 모든 제작진과 스태프들이 개런티 대신 투자 형식으로 참여하게 된다. 제작 역시 스태프와 일반인들, 그리고 엔지오까지 이 작품의 의미에 동참하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출자에 참여하는 ‘노근리 프로덕션’을 만들어 진행하게 되며 배급은 엠케이픽처스가 맡는다. 12월1일 개막을 앞두고 현재 연습이 한창인 극단 차이무의 창단 10주년 기념작품 <마르고 닳도록> 공연(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 끝나는 12월 중순부터 <노근리 전쟁> 촬영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며 2007년 여름 개봉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