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VS DVD]
<레올로> vs <홀리 걸>
2005-11-16
글 : ibuti
삶의 두 가지 모습
<레올로>

소년은 자기의 아비라 불리는 남자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미쳤고 자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변두리에 사는 레오의 상상은 이렇다. 이탈리아산 토마토에 그곳 남자의 정자가 묻어 있었고, 그 위로 넘어진 엄마는 소년을 임신했다는 것. 그래서 소년은 레올로라는 이탈리아식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죄악의 시작인 할아버지를 죽이려던 소년은 난폭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꿈을 꾸고 글을 쓴다. 소년의 환상 속에서 이웃 여인은 영혼의 안식처가 되지만, 환상이 사라진 뒤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함을 깨달은 소년은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구원받지 못한 북미 소년 레올로와 반대로 남미 소녀 아말리아는 누군가를 구원하려 한다. 호텔을 운영하는 이혼녀인 어머니와 아르헨티나 북부의 호텔에서 사는 소녀는 거리공연을 보던 중 낯선 남자가 몸을 밀착하는 걸 느낀다. 그는 학술대회 참석차 호텔에 머무는 의사이자 소녀의 어머니와 짧은 연정을 나누는 인물. 존재의 진정한 의미가 구원에 있다고 교육받은 소녀는 그를 구원하기로 결심하지만, 소녀의 선의는 무시된 채 오해와 헛소동이 일어난다.

<홀리 걸>

가톨릭 배경에서 자라난 십대에게 종교와 구원의 무게는 우리의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소년에게는 가난과 무지와 폭력이, 소녀에겐 중산층의 허위와 부패가 더해지는데, 어쩌면 그들이 구원으로 생각했던 것은 잠시 스친 미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여파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어서, 소년은 파열당하고 부서지는 죽음의 의식을 치르고, 소녀는 짧은 열병에서 깨어나듯 현실로 귀환한다.

<레올로>와 <홀리 걸>은 구체적으로 선악을 구분하기보다 감상적이고 모호한 태도 속에 삶의 불확실성과 신비를 드러내는 영화다. 종교와 섹스, 현실과 환상, 슬픔과 익살, 성스러움과 나른함은 바하와 비제 그리고 톰 웨이츠와 롤링 스톤스가 뒤섞여 흐를 때 나란히 교차한다. 순수와 현실의 충돌을 그린 두 영화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는 레올로가 심리적으로 동조할 만한 친구라면 꿋꿋하게 자랄 아말리아에겐 응원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두 감독은 두 영화를 나란히 두 번째 작품으로 발표하면서 각자 미래를 보장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장 클로드 로종 감독은 비행기 사고로 젊은 나이에 죽으며 영화의 운명과 비슷한 길을 걸어간 반면,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지원을 받아가며 남미의 신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록이 전무한 <레올로>에 비해 <홀리 걸> DVD엔 볼 만한 부록이 몇몇 지원된다. 주제, 배우, 음향의 사용 등에 관해 말하는 감독 인터뷰와 메이킹 필름이 50분에 이른다.

<홀리 걸> 메이킹 필름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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