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호랑이를 구하라> 가슴을 흔드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
2005-11-23
글 : ibuti

잭 레먼이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건 코미디 배우인 탓이 크다. 그런 그가 <술과 장미의 나날>에 이어 심각한 연기를 펼친 <호랑이를 구하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아이러니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등에서 평범한 직장인을 연기하던 레먼은 <호랑이를 구하라>에선 의류회사의 사장으로 등장한다(그는 1980년대 이후 <글렌게리 글렌로즈> <숏컷> 등에서 쇠락한 남자를 연기하며 남자의 애환 어린 연대기를 완성한다).

그러나 아뿔싸! 때는 1970년대. 경영자는 더 이상 그가 그리던 꿈의 직업이 아니다. 우울한 트럼펫 음악, 악몽에서 깨어난 남자, TV의 베트남전 뉴스로 시작하는 영화는 끔찍한 시간의 서곡과 같다. 겉으로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중산층 남자 해리 앞에는 악몽과 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해리는 부인과 딸로부터 심리적인 연대감을 맺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으며, 사업 유지라는 명목 하에 방화 핑계로 보험금을 타거나 거래선에게 창녀를 붙여줘야만 하는 현실은 그를 옥죈다. 그리고 베트남전, 도시폭동, 대통령 탄핵 뉴스가 주변에 자리한 미국 또한 거대하나 병든 해리의 집과 다름 아니다.

‘중산층의 윤리와 국가의 기반’이란 동료의 말이 들릴 리 없는 그는 2차대전의 악몽으로 끝없이 괴로워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향수- 빅밴드의 음악과 야구- 를 추억할 때 그나마 행복하다. 해리는 더 이상 국가를 믿지 않으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순간을 살아남는 데 힘을 쏟는 인물을 대표한다. 커다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을 뻗어 바다를 바라볼 자유를 쉽게 누리지 못하는 해리에게 ‘호랑이를 구하라’란 구호는 먼 이상처럼 보인다.

<호랑이를 구하라>의 마지막 설정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과 흡사하지만 그 결과는 반대다. <욕망>의 주인공이 진실의 문턱을 넘고 있다면, 미국인 해리는 미궁 같은 현실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욕망>의 카메라가 창공으로 부상할 동안 <호랑이를 구하라>의 카메라가 뒷걸음질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연출을 맡은 존 G. 아빌드슨은 이후 미국적 가치를 찬양하는 <록키>로 영광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엇갈린 행보를 통해 1970년대를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DVD 부록으론 감독과 작가의 음성해설만 지원되는데, 현재와 과거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끝말처럼 꼭 들어볼 만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