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해리포터 ‘판타지 제왕’ 등극할까
2005-11-24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임인택
킹콩-나니아 연대기와 불꽃 3파전
<해리포터와 불의 잔>

지명도는 ‘해리포터’가 높지만, 전적을 따져보면 결코 순탄치 않은 3파전이다. 불행히도 ‘해리포터’는 세 번째 시리즈까지 한국 무대에서는 단 한 차례도 ‘반지 원정대’를 이기지 못했다. 3편까지 모두 1000만명 가량의 관객을 불러모았지만 매 편마다 <반지의 제왕>에 밀렸다. 징크스는 이렇게 이어진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이 이번엔 <킹콩>을 들고 왔고, 이번 ‘해리포터’와 엇비슷한 제작비로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팀이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 공력을 쏟아부었다.

첫사랑에 빠진 해리포터=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제작비인 1억3천만 달러를 들여 만든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미국에서 시리즈 최고치인 3편(<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흥행수입(9368만 달러)을 이미 앞질렀다.

기존의 액션, 서스펜스에 이번엔 해리포터(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첫사랑이 더해졌다. 그냥 마법사가 아니다. 1편 때보다 다섯 살이나 더 먹은 사춘기 마법사들이 주인공인 것. 한 번도 특수효과 영화를 찍어본 적 없던 마크 뉴웰 감독(<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연출)에게 메가폰을 맡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럽의 명문 마법학교에서 선발된 세 명의 챔피언과 해리포터가 마법 대결을 펼치는 ‘트리위저드 대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해리 포터의 부모를 죽인, 악의 상징 볼드모트(랠프 파인즈)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극적 긴장을 높인다. “판타지 영화의 현실성, 사실감”을 강조했던 뉴웰 감독의 연출력이 기대를 모은다. 12월1일 개봉.

<킹콩>

디지털로 태어난 감성 킹콩=피터 잭슨 감독이 2천만 달러(220억원)의 개런티를 받고서 만들었다. 한국에 잘 알려진 건 제시카 랭이 주연한 1976년도 판이지만, 잭슨 감독은 “티브이에서 보다가 전율을 느끼”며 자신에게 영화 감독의 꿈을 심어준 1933년작 오리지널 <킹콩>을 리메이크했다.

영화 제작자 덴험이 돈을 벌 속셈으로 여배우 앤을 미끼 삼아 해골섬에서 발견한 킹콩을 뉴욕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인간의 사리사욕에 분노한 킹콩은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영화는 원작과 이야기의 얼개만 같은 뿐, 대사는 전혀 다르다. 실제 사건을 보는 양 관객들을 이끌기 위해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온 ‘골룸’을 원형 연기했던 앤디 서키스의 동작에 첨단 디지털 기술을 입혀 18미터짜리 킹콩을 탄생시켰다.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앤에게 절절한 사랑을 바치는 감정 연기마저 가능한, 진정한 영화 속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 53개의 미니어처 배경으로 해골섬도 고스란히 살리는 등 제작비만 2억700만 달러에 달하는 그야말로 대작이다. 그럼에도 그저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마지막 앤을 손에 쥔 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포효하는 킹콩의 ‘눈물 연기’로 감성을 자극하겠다는 계산이다. 앤 역은 나오미 와츠. <태풍>과 정면 승부하는 12월14일 개봉.

<나니아 연대기>

눈으로 보는 나니아 연대기=C.S 루이스가 1950년대에 쓴 <나니아 연대기>는 지금까지 9천만권 가량 팔린 판타지의 고전이다. 이를 원작 삼아, <슈렉>을 만든 앤드류 아담슨 감독이 1억5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3년6개월에 걸쳐 만든 첫 실사 영화란 점부터 눈길을 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각화한 듯, 영화 속 캐릭터가 이처럼 다양했던 영화는 없다. 1000여 가지의 생명체 캐릭터가 영화를 가득 채울 참이다. 숨겨진 옷장을 통해 미지의 세계 나니아에 들어가면서 수많은 종족을 상대로 펼치는 네 남매의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나니아를 겨울로 뒤덮은 ‘하얀 마녀’와 나니아의 평화를 위해 모험하는 네 남매의 선악 구도가 축이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보다 많은 1000장 가량의 컴퓨터 이미지 등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볼거리로 원작의 상상력을 살려내려 한다. 12월30일 개봉.


‘무극’ 판타지·액션 뒤섞거나, ‘청연’ 담박하고 잔잔하거나

<청연>

아예 다른 청연=“나는 긔여히 비행가로써 성공을 하야 남자에게 지지 안는 활동을 하겟소.”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말이다. 그의 삶을 담박하고 잔잔하게 그린 <청연>. 과장이나 꾸밈을 기본 안감으로 삼는 올 겨울 주류 영화들의 판타지나 액션과 가장 다른 빛을 띠고 있다. 오랫동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위기론까지 거론됐지만, 3년여 인고 끝에 결국 관객을 만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반갑다.

2004년 4월 미국 엘에이에서의 항공 특수 촬영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등을 넘나들며 1920~30년대 극동의 풍경을 실제감 있게 담았다. 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덧댄 항공 영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드라마 실사에 더 많이 의존한 작품이다. 17살의 나이로 비행사의 꿈을 지니고 혈혈단신 일본으로 처음 건너간 지 11년 만에 비행사 자격증을 따냈지만 ‘청연’을 몰고 고국 비행을 떠난 1933년 폭풍우로 추락해 33살 나이로 사망한 경원의 삶이 더 영화다운 탓이다. <싱글즈>에 이어, 복엽기를 모는 장진영과 그를 사랑하는 김주혁(다치가와)의 호흡도 기대되지만, 이 영화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름>으로 평단을 놀라게 했던 윤종찬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기 때문이다. 12월29일 개봉.

<무극>

아예 섞은 무극=판타지와 액션이 아예 합치면서 <무극>은 주류 영화들과 또 다르게 구별될 법하다. 장동건과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등 한중일 배우가 함께 만드는 판타지 서사 액션물인데, <패왕별희>의 첸 카이거 감독이 내놓은 첫 무협극이기도 하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끊이질 않는 미지의 시공간에서 초인적 능력을 가진 노예 쿤둔(장동건)이 영웅적 인물로 변모해가는 동안, 첸 카이거는 운명이 엇갈리는 세 명의 중심 인물을 교차시킨다. 절대미를 얻은 대신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경성(장백지), 패배를 모르는 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 사악한 귀족(사정봉)이 그들이다.

3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다국적 프로젝트다. 첸 카이거만의 영상과 국제 스타로 움트는 장동건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법하다. 1월말 개봉.


겨울에 ‘로맨스’ 가 빠질소냐

<데이지>
<사랑을 놓치다>
<로망스>
<파랑주의보>

옆구리 시린 겨울을 녹여줄 로맨스 영화들이 1월에 줄줄이 개봉한다. 전지현이 엽기녀에서 벗어나 가슴 아픈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분하고 네덜란드의 이국적 풍경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할 <데이지>를 비롯해 설경구, 송윤아가 20대에 친구로 만나 30대에 연인으로 발전하는 커플로 출연하는 <사랑을 놓치다>, 부유한 유부녀와 퇴물 경찰의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김지수, 조재현 주연의 <로망스>, 영화 데뷔하는 송혜교와 차태현이 교복 차림으로 등장해 10대의 풋풋한 첫사랑과 이별을 나누는 <파랑주의보>(12월22일 개봉) 등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랑 이야기가 관객을 기다린다.

<왕의 남자>
<음란서생>

<황산벌>에 이어 이준익 감독이 다시 사극에 도전하는 <왕의 남자>도 12월 말 개봉한다. <황산벌>에서 걸쭉한 사투리로 웃음을 자아냈던 반면 2000년 대학로 최고 화제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왕궁을 배경으로 궁중 광대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김대우 감독의 연출데뷔작 <음란서생>(1월 말 개봉) 역시 조선시대가 배경인 사극으로 사대부 출신의 양반이 음란 소설 창작에 빠져들면서 신분을 숨기고 ‘음란물 유포’에 맹활약을 하다가 겪게 되는 위기를 그린다.

<싸움의 기술>
<작업의 정석>

코미디 영화로는 매일 맞고다니던 ‘고딩’이 전설의 무술 고수를 만나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는다는 내용으로 백윤식이 공중부양하는 고수로 출연하는 <싸움의 기술>(1월6일 개봉)과 1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깡패 두목 계두식(정준호)이 교생으로 다시 학교에 복귀한다는 내용의 <투사부일체>(1월 말 개봉), 눈물의 여왕 손예진이 ‘선수’로 변신해 강적인 송일국과 만나는 로맨틱코미디 <작업의 정석>(12월22일 개봉) 등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다.

한국영화 강세인 올 겨울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외화 기대작으로는 진가신 감독의 홍콩 영화 <퍼햅스 러브>(12월29일 개봉)가 있다. 한국배우 지진희의 캐스팅으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물랭 루즈>를 연상시키는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로 금성무, 장학우 등이 출연해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하며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질투를 거대한 스펙터클로 담아냈다. 지난해 유달리 행복했던 애니메이션 팬들이라면 1월 말 개봉하는 디즈니의 <치킨 리틀>로 작은 위로를 받을 만하다. 디즈니가 픽사와 결별하고 자체생산한 이 작품은 꼬마 닭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겪는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최근 미국 개봉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예술영화 팬들에게도 연말은 조용한 축제 기간이다. 하이퍼텍 나다는 올해도 변함없이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해놨다. 올해 나다의 히트작인 <아무도 모른다> <어떤 나라>를 비롯해 <카페 뤼미에르> 등 아깝게 놓친 수작 20편을 상영한다. 씨네큐브는 알랭 레네의 80년도 연출작인 <내 미국 삼촌>을 12월23일 개봉하면서 트뤼포의 <줄 앤 짐> 고다르의 <비브르 사비>를 띠상영 방식으로 재상영하는 ‘프렌치 뉴웨이브’ 특별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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