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날렵한 소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무영검>의 윤소이
2005-11-28
글 : 김나형
사진 : 오계옥

약간 걱정이 되었다. “야, 나 부탁이 있는데… 장풍 쏘는 것만 어떻게 네가 가르쳐주면 안 되겠냐?” 하는 식으로 굴었다간 그로부터 아주 조용히, “지랄을 해요, 지랄을 해” 이 한마디를 들을 것 같아서였다. 스튜디오로 모든 것이 길고 세련된 윤소이가 들어선다. 시원스런 그 모습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났음에 놀라, 아니나 다를까 ‘정말 말랐다’는 멍청한 찬탄사를 내뱉고 만다. 아뿔싸. 눈을 질끈 감는다. “아니, 제가 뚱뚱해 보였어요? 내가 그렇게 뚱뚱하게 나왔나?” 야단맞는 아이처럼 천천히 올려다보니 칼을 든 무사도, 무뚝뚝한 아라치도 아닌, 활짝 웃고 있는 소녀가 있다.

이동통신사 CF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 숱한 오디션에 낙방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는 그는, 벌써 세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소녀 같은 느낌이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소녀. 명랑하고 털털하며 이상할 만큼 때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의 영채는 실제 그녀와 가장 닮은 캐릭터인지 모른다. 숨기거나 포장하는 일은 할 줄 모르는 솔직하고 순수한 활기. 진정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자신조차 지키지 않기에 동시에 가장 상처받기 쉬운 사람. “처음이라 그랬는지 저도 모르게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몰입해 있다가 <사랑한다 말해줘>가 끝나고 나니까 한동안 멍해져서 아무것도 못했어요. 가만있는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음은 <무영검>의 연소하도 마찬가지다. ‘일생 동안 도망의 삶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원치도 않는 왕이 되라는 거냐’고 울분을 토하는 왕자. 소하는 그를 적들로부터 지키는 동시에 그의 오랜 상처로부터도 구해낸다.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너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 저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켰습니다.” 자신을 외면한 고국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던 왕자는, 그녀의 한결같은 충심에 이끌려 그 땅과 백성의 왕이 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상기할 때, 연소하라는 캐릭터는 조금 당황스럽다. 내지르는 듯한 솔직함이 미덕인 <아라한…>의 의진은, 여태껏 윤소이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이었다. 머리 감다 인상을 확 그으며 “아이 씨, 진짜…. 집안에서 장풍 쏘지 말라니까” 뇌까리고 ‘그렇게 누구를 이기고 싶으면 네 자신부터 좀 이기’라고 일침을 놓는 이 쿨 걸(cool girl)에 비하면 <무영검>의 연소하는 지루할 정도로 조용하다. 자신의 검에 희생된 영혼들을 위해서까지 매일 향을 피우는 인물이니 일견 오버된 천사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연소하의 그런 한결같은 이미지가, 4명의 주인공이 난립해야 하는 <무영검>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는다. 어떤 원한도 욕심도 없어 그 칼에마저 그림자가 깃들지 않는, 이 발해 최고의 무사는, 분노와 원한이 담긴 마지막 일격으로 자신을 죽여보라는 군화평에게 “검은 죽이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드는 것”이라 말한다.

“<무영검> 시나리오가 왔는데, <아라한 장풍대작전> 때 너무 고생을 해서 ‘안 하겠다고 하려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 보고나서 의외로 본인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매니저의 말이다. 그가 <무영검>을 집어든 것은 성공한 의진의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하가 의진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 무사 역할에 어울릴 법한 배우가 현재 한국에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시원스런 체형과 세련된 마스크, 나약하지도 오버스럽지도 않은 이미지의 윤소이는, 액션무협의 여주인공으로서 이론(異論)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는 용감하고 열심이다. “연소하랑 매영옥이 붉은 천 가지고 싸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원래는 아주 짧은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 찍기 전에 기용씨랑 둘이서 나름대로 연습을 했는데, 그게 괜찮았나봐요. 감독님이 더 해보라 그러셔서 결국 원래 길이보다 훨씬 길게 들어갔어요.” “고생도 많이 했죠. 하루 10시간씩 와이어에 매달려 있으니까 나중에는 익숙해지더라고요. 보호대 입으나 안 입으나 어차피 아픈 거, 날씬하게라도 보이자 싶어서 나중에는 보호대도 빼고 찍을 정도였다니까요.” 어느 틈엔가 쾌활하고 털털한 소녀로 돌아온 윤소이는, 힘들었지만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는 에피소드들을 재잘재잘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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