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에이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제1회 레드리본페스티벌
2005-11-30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국내 첫 에이즈 관련 영화제 제1회 레드리본페스티벌, 12월1일 개막
레드리본페스티벌 포스터

수잔 손택은 “오늘날, 인간이라는 종의 삶과 희망을 꺾는 가장 무시무시한 징계는 에이즈”라고 말했다. 그것은 한 인간을 육체적으로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질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결핵이나 암과는 전혀 다른 메타포를 갖는다. 결핵이 창백한 피부와 빨간 입술로 인해 병약한 아름다움을 환기시키고, 암이 경로를 알 수 없는 병인 때문에 불운을 상기시키는 것과 달리 에이즈는 성적 방종과 범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들이, 이 신이 내린 천벌과도 같은 질병인 에이즈의 원인이자 병원균인 것처럼 여겨져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HIV/AIDS 보균자와의 접촉은 물론, 이 질병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이 페스티벌의 제목이기도 한 ‘레드리본’은 HIV/AIDS에 대한 사회적 교육을 강조하는 상징이며, HIV/AIDS 환자들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지지의 표현이다. 12월1일부터 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나흘 동안 열리는 레드리본페스티벌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에이즈 관련 영화제이다. AIDS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 20년이 되었고, 감염자 수가 3천명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이 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공포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번 레드리본페스티벌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통해 HIV/AIDS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시선을 접하고 공론화의 장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대중에게 친근한 <너는 내 운명>이다. 에이즈에 걸린 여성과 순박한 농촌 총각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HIV/AIDS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촉발하기 위한 선택인 듯 보인다. 이 영화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일반적인 무지와 오해 그리고 사회적 편견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부분들, 예를 들면 왜 은하가 에이즈에 걸리게 되었는지, 마을사람들이 에이즈에 관해 내뱉은 대사들이 진실인지 그리고 석중이 앞으로 어떻게 에이즈에 걸리지 않고 은하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면 이번 페스티벌에서 상영되는 에이즈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HIV/AIDS에 관한 지식의 입문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미국의 빌 하이머 감독이 만든 <한 걸음 더 가까이>(The Closer Walk)이다. 이 영화는 ‘에이즈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현재 이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에이즈는 사회구조 안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병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대륙,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 제도적 조건과 육체적 여건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이 영화는 에이즈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극복할 수 있고, “에이즈가 아니라 우리가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감독의 해석보다 각 대륙의 HIV/AIDS 환자들과 가족, 그리고 그들을 돕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면 남아프리카 대륙의 한 부락인 나칸디아의 에이즈 고아들을 다룬 <나칸디아의 아이들>(Orphans of Nkandla)과 베트남의 HIV/AIDS 환자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희망의 도시>도 좋은 선택이다. 이 두 작품은 편견과 치료약 부족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HIV/AIDS 환자들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페스티벌을 통해 HIV/AIDS가 우리 모두에게 개인의 도덕적 낙인이 아닌 세계가 풀어나가야 할 의학적 병명으로 각인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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