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쓰린 상처를 위안하는 리듬, <이터널 선샤인> O.S.T
2005-12-02
글 : 이다혜

당신은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가? 헤어진 연인을,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가 아니면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가. ‘지워버리자’고 생각했던 실패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사실 기쁨으로 충만했던 시간도 많다는 것을 머리와 마음으로 깨닫게 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공감각적 방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에 있다. 이 영화는, 정말 놀랍게도, 줄거리만 읽고서는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을지,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가슴저리고 애틋하여 슬프기만 할 것 같던 영화는 사실 명랑하며, 그 음악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다.

프로듀싱을 맡은 존 브라이언은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O.S.T 프로듀싱을 맡으며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인물이다. 이 음반에서 귀기울여들을 두곡은 바로 코기스의 80년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벡의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과 폴리포닉 스프리의 <Light & Day>. 벡의 노래는 절실한 애원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 태양이 필요한 것처럼”이라며 “마음을 바꿔요”라는 그의 음성을 듣고 있으면 과거의 추억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심포닉 팝 그룹 폴리포닉 스프리는 종교집단의 성가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룹. 자그마치 29인조로, 공연 때에는 물만 200병 이상 요구한다는 풍문도 들려오는 이 기이한 그룹은 마약중독이나 종교적 환영을 볼 때와 같은 느낌의, 쭈욱 뻗어 올라가는 즐거움이 비누거품처럼 보글대며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오묘한 음악을 들려준다. 태양을 향해 손을 뻗으라는 그들의 집요한 노랫말은 영화 제목 중 ‘영원한 햇살’(eternal sunshine)이라는 구절과 맞닿는 느낌이다. 이별이 무섭다고 사랑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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