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빨간 모자 아가씨의 거침없는 출발, <무영검>의 이기용
2005-12-05
글 : 박은영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당신, 어느 별에서 오셨수?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대면하면, 그렇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이기용은 특히 그랬다. 180cm가 넘는 큰 키, 길고 늘씬한 팔다리, 커다란 이목구비가 들어찬 여백없는 얼굴은, 보고 또 보아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빨간 모자 아가씨’로 등장한 주유소 광고에서 육감적이고 이국적인 매력을 뽐냈던 그 이기용이 <무영검>으로 연기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군화평(신현준)을 따라 반란군이 된 여성무사 매영옥이 그녀의 역할. 이기용의 캐스팅으로 신이 난 의상팀은 타이트한 자주색 가죽 의상을 제작했고, 김영준 감독은 그에게 쌍칼과 표창을 쥐어주었다. 이기용의 길쭉한 팔다리가 그리는 시원한 동작, 유난히 크고 강렬한 눈매, 절도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체현한 매영옥을 보면, 다른 여배우를 대입할 수가 없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출발인 것 같다.

“얼굴 알려지고 시나리오 몇편을 받았는데, CF 이미지에 기댄 역할들이었어요. 제 외모만을 원한 시나리오들이었죠. <무영검>은 달랐어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려 하면서도, 연소하(윤소이)를 제치고 ‘최고 무사’가 되고자 하는 열의가 마음에 들었어요. 매영옥. 이름도 멋지잖아요.” 그래도 처음인데, 너무 ‘센’ 영화를 고른 걸까. 반년 가까이 중국에서 훈련하고 촬영하면서, 초짜배우인 이기용은 몸도 마음도 고달팠다. 언론에 공개된 메이킹 필름을 보면, 이기용은 고지대인 리장에서 촬영할 때 고산증으로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가기도 했고, 윤소이와의 대결신에서 검에 스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아파서라기보다는 서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20테이크 정도 갔을 땐데, 힘이 빠져서 제가 합을 못 맞춘 거죠. 나 하나 때문에 다들 고생하나 싶어서, 너무 미안했어요. 간신히 마음을 추스렸는데, 마옥성 감독님이 막대사탕을 들고 와서 절 달래는 거예요. 아파? 괜찮아? 그러시면서. 그래서 또 눈물이 터졌죠.”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전하면서, 눈이 다시 살짝 젖어든다.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히 컸고 이목구비가 진했던 이기용은 “미스코리아 나가라”는 얘길 인사처럼 듣고 자랐다. 계단 아래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거나, <동방불패>의 임청하를 흉내내고 다녔다는 일화가 증명하듯, 그는 새침한 ‘공주’보다는 터프한 ‘여장부’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호기심으로” 지원한 슈퍼모델 대회에서 덜컥 1위로 입상하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모델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키가 너무 커서 TV나 영화엔 안 맞는다는 말들에, 상처받고 의기소침하기도 했는데, CF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무영검>은 그에게 데뷔작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중국 촬영 이후로는 집에서 ‘요양’하는 걸 즐기게 됐어요. 이젠 안정된 걸 하고 싶어요.” 남보다 보폭이 커서일까. 이 꺽다리 미녀는 다음 작품으로 총총히 달려가진 않을 거라고 했다. 천천히, 하지만 성큼 대디딜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스타일리스트 이보람, 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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