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월버그가 팀 버튼의 <혹성탈출>을 찍으며 일으킨 단 한번의 반란.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행성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다른 인간들처럼 원시인 행색을 하기로 돼 있던 그가 원시인 복장을 끝내 거부했다. 오리지널판의 찰턴 헤스턴과 달리, 리메이크판의 마크 월버그가 온몸을 빈틈없이 동여맨 우주비행사 복장으로 뛰어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그 고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힙합밴드 시절 무대 위에서 바지를 내린 해프닝이며, 캘빈 클라인 속옷 모델로 활동하던 경력이며, 출세작 <부기 나이트>의 물건 큰 포르노 배우의 이미지가 아직도 생생한데, 그런 그가 새삼 노출에 민감해진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서는 무엇보다 그 모든 꼬리표들이 지긋지긋했을 터. “나부터도 상대역인 에스텔라 워런의 아슬아슬한 원시인 복장 때문에 가슴을 훔쳐보는 일이 잦았다. 이건 안 된다, 그녀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배우의 몸을 보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좋은 일이 아니다.” 마크 월버그의 유니폼(원시인복) 착용 거부 소동은, 팬서비스를 포기하는 대신 진짜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각오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년과 남자의 가운데 어디쯤, 늘상 앳되고 순한 얼굴이던 마크 월버그가 달라졌다. <혹성탈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행성에 불시착한 공군 대위 레오. 그곳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자존을 일깨워주고 떠나는, 지혜롭고 강인한 구세주 같은 인물이다. 리더십이 추가되긴 했지만, 여전히 순수하고 친근한 이웃집 총각의 모습. 메이저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에서는 처음으로 주연을 따냈지만, 정작 그가 이 작품을 수락한 이유는 감독, 바로 팀 버튼 때문이었다. “나는 팀 버튼의 세상과 그의 비전이 잘 구현되도록 도왔을 뿐이다.”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대중성이나 규모가 아니라 감독의 면면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속속들이 채워져 있다. 페니 마셜의 <르네상스 맨>, 폴 토머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데이비드 O.러셀의 <쓰리 킹즈>, 제임스 그레이의 <더 야드>, 볼프강 페터슨의 <퍼펙트 스톰>. 마크 월버그 자신도 그의 작품 선정 기준은 ‘감독’뿐임을 공언한 바 있다. “나는 비싸고 멍청한 액션물 출연 제의를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영화감독(director)이 아니라 찍는 사람(shooter)에 불과한 이들의 프로젝트는 날 매혹시키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처럼 환상적인 감독들과 어울리고, 그들이 내게서 뭘 원하는지 깨달아가면서 살고 싶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마크 월버그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소개한 <더 야드>에 관한 일화. 경찰에게 쫓기던 주인공이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마크 월버그는 “내가 어머니가 원하던 아들이 못 된다는 걸 안다.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다”는 요지로 6분가량의 눈물어린 애드리브를 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피력하며 옛 동네 극장을 빌려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고 한다. 이처럼 배우 마크 월버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그의 성장 스토리다. 보스턴 빈민구역에서 9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일찍 학교를 중퇴하고 마약에 중독돼 감방까지 드나들던 문제 소년이 할리우드의 차세대 스타로 부상했다는 사실이, 아메리칸 드림의 한 토막으로 회자되곤 하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힙합 스트리트 키드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한때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멤버로, ‘마키 마크 앤 펑키 번치’의 멤버로 음악생활을 시작했지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는 뮤지션의 생활은 나를 트러블 메이커로 방치할 뿐”이라는 깨달음에서 “규율이 필요한” 연기자의 생활로 뛰어들었다. 영화에서는 “절대 노래 안 부르고 춤도 안 추고 옷도 안 벗기로 했다”지만, 벌써 틀렸다. <부기 나이트>에서 옷은 벗어던진 지 오래고, 차기작 <록스타>에서 노래와 춤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였으니 말이다. 평범한 듯 비범한 악동 마크 월버그, 조만간 <부기 나이트>에 버금가는 ‘대형 사고’ 한건 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