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1등 한번 해보겠다는데 딴죽을 거는 사람들은 처죽여도 시원치 않다는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은 의외로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라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크리스마스 납량특집 영화를 보고서 알게 된 사실이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의외로 전복적인 영화다. 어떤 싸움이 나고 긴장이 펼쳐져도 결국 따스함과 달콤함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크리스마스 영화들과 비교해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가 겪는 고충은 거의 호러영화 수준까지 끔찍해진다. 집 앞에서 캐럴을 불러대는 사람들을 피해 있던 부부가 바로 앞 창문에 바짝 붙어 노래를 하는 합창단원과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비명이 나올 지경이고 지하실로 내려간 부부를 내려다보는 눈사람은 공포영화가 전형적으로 귀신을 잡는 앵글로 비쳐지며 모골송연한 표정을 짓는다.
또한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기 위한 부부의 안간힘을 그린 전반부와 부부가 마을 사람들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는 후반부를 대비하여 행복한 화해를 보여주려고 하지만 전반부에 너무 나간 나머지 크리스마스라는 초록과 빨강의 반짝이 포장지 속에 숨쉬고 있는 공동체 정신의 살벌한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만다.
이유야 어쨌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모든 행위를 건너뛰려던 중년 부부는 마을 사람들의 엄청난 태클을 받는다. 왜? 크리스마스에 베풀 수 있는 아름다운 자선행위를 거절하는 파렴치범이기 때문에? 아니다. 본질적인 이유는 마을 대항 크리스마스 장식대회 때문이다. 알록달록 색전구와 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꾸며놓은 다른 집들 사이로 아무런 장식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부부의 집 때문에 지난해 크리스마스 장식대회에서 1등을 했던 이 동네는 올해 6위로 처졌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안 하겠다는 부부의 ‘소수의견’은 깡그리 무시되고 마을 사람들은 눈사람을 꺼내놓기만 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어르다가 급기야는 집 앞에서 시위를 하고 협박전화까지 한다. 시위 구호는 ‘눈사람에게 자유를’(Free Frosty)!이다. 다른 집과 비교되는 부부의 집은 몰래 촬영돼 지역 신문에 실리고 언론은 올해의 크리스마스 장식대회 성적을 바닥으로 까는 데 공을 세운 두 부부를 애향심없는 이기적인 부부로 몰아간다. 우리 마을이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는 1등 좀 해보겠다는데 감히 개겨? 이 매향노야!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살기의 고단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국의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걸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영화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부부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쓴 돈이 6천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600만원 넘게 돈을 뿌려야 중산층 공동체 낙원에서 낙오되지 않는 이들에 비해 암 유발 등 약간의 부작용만 감수하면 ‘공짜’로도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약속할 수 있는 한국은 얼마나 평등하고 좋은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