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몰라, ‘지구’에다, ‘영웅’도 모자라, ‘전설’이라니! 소설가 박민규의 데뷔작 <지구영웅전설>(2003)을 손에 든 나는 그 원색적인 제목에 탄식했다. <지구영웅전설>은 힘과 돈으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슈퍼맨, 배트맨 등 미국산 영웅들로 결성된 슈퍼특공대 말단에 끼어든 한국인 ‘바나나맨’(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의 처량한 회고담이었다. ‘제8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지구영웅전설> 말미에 실린 심사평에는 ‘도식적 정치비판’이라는 지적이 포함돼 있었다. 아무렴. 끄덕이던 나는 갸웃했다. 그렇지만, 그건 작가도 몰랐을 리 없잖아? 그래서 나는 박민규의 다른 소설이 더욱 궁금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딱 두달 뒤 ‘제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출간됐다. 한 사내가 1할2푼5리의 승률로 운영하는 행복한 삶의 방식을 터득하기까지의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박민규는 그해 거의 모든 문학상 공모에 장·단편을 출품한 터였다. 정말이지, ‘준비된 신인’이란 표현이 임자를 만난 것이다.
스스로 소설 작법이나 작가들의 관행을 전혀 모른다는 박민규는, 소설은 모름지기 두꺼운 책이려니 짐작하고 대뜸 장편부터 내놓았다가 뒤늦게 단편에 착수한 경우다. “원래 그러는 거 아닌데. 물어보기라도 하지 그랬어?”라는 문예창작과 선배의 반응에 당황하여 부랴부랴 썼다고 한다. 그렇게 2년 동안 쓴 30편 중 10편을 가려 묶은 <카스테라>가 올해 6월 출간됐다. <카스테라>의 캐릭터 중 일부를 잠시 소개하자면 기린으로 변신한 가난한 아버지, 한 덩이의 카스테라로 화(化)한 20세기, 하늘을 나는 오리배로 지구를 떠도는 세계시민연합 등이 있다. 깜짝이야. 독자들의 반응은 대략 그러했다. 그 막강한 상상력과 고강한 농담과 손수 그린 일러스트와 느닷없는 행갈이와 숨가쁜 쉼표가 모두 재미있는 화제가 되었다. 한편 그가 부지런히 소설을 쓰는 와중에 작은 소동도 일었다. 계간 <대산문화> 2004년 여름호에 선배 문인들이 젊은 작가들에게 보낸 조언에 박민규는 <좃까라 마이싱이다!>라는, 제목이 곧 주제인 글로 답했다. 그런가 하면 비디오 대여 연체료 미납에 관한 칼럼으로 말미암아 대여업 중앙회 등으로부터 피소될 위기에 처했다는 ‘언저리 뉴스’ 같은 기막힌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작가 박민규는 지독히 수줍고 소박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잘 조절해, 흐트러지지 않고 글을 많이 쓰고, 그것으로 먹고살면 된다”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 중인 <핑퐁>까지 지금껏 발표된 그의 소설에서는 항상 유머와 비장함, 골계와 숭고라는 기묘한 복식조가 박진감 넘치는 랠리를 벌인다. 그 게임은 과연 쿨하고 도발적이지만, 차갑거나 건조하지는 않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 일반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과 낙원을 그리는 상상이 간절히 거듭되는 박민규 소설의 속살은 뜨겁고 보드랍다.
소설가 박민규를 만나기 전날 밤 서울에는 무지막지한 첫눈이 내렸다. 눈발을 구경하며 늦게까지 그의 소설을 뒤적이다 잠을 청했지만 실패했다. 밤새도록 머릿속에서 박민규의 미발표작을 누군가 낭독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박민규 소설인 줄 아냐고 묻는다면, 세상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려야 못할 수 없는 문체가 있다고 말하련다.) 뜬눈으로 샌 이튿날 정오. 불면을 조장한 막강한 포스의 주인공이, 슈퍼맨의 S자를 품속에 숨긴 클라크 켄트처럼 내성적 포즈로 얼어붙은 골목길 안쪽 카페에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문장보다 약 3.14배 느릿한 속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4년 계간 <대산문화>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없다”고 쓰신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귀한 시간인데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받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는 사람으로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여기시나요?
=사실 오늘이 언론 매체와 하는 마지막 인터뷰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도 인터뷰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뭐 12월이니까 내년부터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웃음) 현재 장편을 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고 앞으로도 인터뷰는 안 하려 해요. 왜냐하면 유명해지는 것이 안 좋다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조금만 알려지고, 아는 사람들이 책 사주고, 그걸로 먹고살면 딱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유명해진 탓에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겪으셨나요?
=상처받거나 해서는 아니에요. 그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바쁘게 살지 말라고 해놓고는(세간에 알려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테마는 ‘잡기 힘든 공 잡지 말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말자’다), 정작 나 자신은 바쁘게 사는 게 싫어요. 그냥 글 쓰고, 청소하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며 한가히 지내는 것이 좋아요. 인터뷰 자꾸 하면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싫어요. 나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놈이… 저는, 아직 소설이 뭔지 소설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고, 비록 나이야 계속 들겠지만 중견이나 원로 그런 것은 되고 싶지 않아요. 늘 신인으로 살고 싶어요.
-소설을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한 글에 의하면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경기를 보다가 타이슨이 귀를 물어뜯는 장면을 보고 계시처럼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고 했는데, 진정 그랬나요? 그때 ‘소설’이 작가님께 의미하는 것은 긴 글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요?
=뭐랄까, 경기도 삶도 규칙이 있잖아요? 그런데 타이슨이 규칙 안에서 하다 안 되니까 답답해서 상대방 귀를 깨물어 뜯더라고요. 우와, 싶었죠. 순간 타이슨한테 이입됐어요. 그 무렵 직장생활을 오래했을 때인데 문득 나도 좀 그러고 싶었어요. 그것이 소설을 쓰는 쪽으로 확 다가온 거예요. 처음에는 스스로 그 충동에 대해 많이 당황했어요. 써본 적도 없거니와 결혼할 때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 아내에게도 갑작스런 소식이 될 테고. 게다가 막 아이가 태어날 무렵이었어요. 에이, 그냥 덮어두고 계속 직장생활을 했는데, 나중엔, 병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 자신도 이해 못하지만 “아무튼 이렇다”고 아내에게 말을 했죠. 근데 집사람이 흔쾌히 수락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써보라고 나섰어요. 2년 넘게 아내 혼자 생활비를 벌고 저는 집에서 글을 썼죠.
-<베스트셀러>라는 잡지가 소설가가 되기 전 마지막 직장입니다. 그곳에서 부인을 만나신 것 외에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히 글쓰기에 대해 얻은 건 없어요. 오히려 문학잡지라서 매달 유명작가들 만나서 인터뷰를 하니까 그 전에 작가들에 관해 가졌던 환상이 깨졌죠. (웃음) 다들 정말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이고 가정 꾸리고 살아가고 그런 면에서 현실적으로 작가들을 보게 됐죠.
-잡지를 편집하기 전에는 해운회사 영업사원, 광고사 카피라이터 등 다른 일도 하셨습니다. 작가님은 경험을 소설화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불가피한 인용이나 재현의 수준에서 흔적이 드러날 때마다 직장경험이 대개 부정적 맥락에서 인용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저는 7, 8년간 직장생활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보편적인 세상살이를 많이 배웠어요. 모르긴 해도 대학 때 등단하고 작가가 됐다면 저는 진짜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썼을 거예요. 직장 다니는 동안도 돈 때문에 퇴근하면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육체노동부터 수십 가지에 달하는 일을 했죠.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들이 늘 그렇게 바쁘군요. (웃음)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었죠. 그래서 저는 90년대 10년간은 책도 영화도 접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리 개의치는 않아요.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글을 쓸 건 아니니까. 내가 쓰는 글은 내가 쓸 수밖에 없으니까.
난 부족한 놈이니까 이대로 그냥 살래요
-한동안 LA 메탈 밴드의 멤버처럼 긴 머리를 고수하다가 지미 헨드릭스 스타일로 바꾸셨습니다. 사람의 외양이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세요?
=머리 기르는 건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 대학 시절부터 길렀어요. 어린 시절부터 히피즘, 히피에 대한 동경도 컸어요. 그맘때 히피의 가치가 뭔지 알 리는 없고, 그냥 환상이죠 뭐. 머리에 꽃 꽂고 전쟁 반대하고 자유 외치는 모습이 아름답잖아요? 그런데 나이 들면서 그런 환상도 거의 깨졌죠. 한번은 진짜 히피들이 입었던 옷을 e-베이에서 경매로 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메이드 인 코리아’더라고요. 동남아 물건도 있고요. 후진국에서 만든 옷을 입고 미국에서 반전을 외치고, 그게 당시 세계의 흐름이었겠죠. 실지로 우드스톡 같은 페스티벌에서 싸움이 엄청나게 많았대요. 롤링 스톤스 공연에서는 사람도 죽었잖아요? 공연 도중에 앞에서 하도 싸우니까 제발 싸우지 말라고 외치고. 인간이 모여서 하는 일들은 결국은 그런 식인 거 같아요. (웃음)
-꼭 1960년대 미국이 아니어도 히피로서 태도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히피로 사는 것도 이젠 맘에 안 들어요. 아무튼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건데, 왜 사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는 건 참, 하하, 묘한 설정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살아요. 잘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내가 잘살면 다른 누군가가 못살 것이라는 느낌도 들어요.
-이 세계에서 고통의 총량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의미인가요?
=예. 그래서 지금은 막연하게 특별히 아무것 안하고 그냥 있다가 가고 싶어요. 소설은 그냥 좋아서 써요. 소설도 예전엔 아주 많이 쓰고 싶었는데 지금은 뭘 또 그렇게 열심히…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부터 그런 태도를 갖게 되셨어요?
=<카스테라> 나오고 가을경부터요. 전에는 여유와 자유가 같다고, 비슷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대부분 여유로워지면 자유로워질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게 전혀 다른 거라는 걸 얼마 전 느꼈어요. 여유로워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고 여유와 자유는 별개라고. 내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대부분은 여유더라고요. 다들 돈 열심히 버는 것도, 글 잘 쓰고 싶었던 것도, 여유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유는 좀더 어려운 거라고 생각해요. 자유에 어떻게 다다를지… 방법이요? 물론 모르죠. 왜 사는지도 모르는데….
-상을 받은 것은 <지구영웅전설>이 먼저지만 쓰기는 <삼미 슈퍼스타즈의…>부터 쓰셨다고요. 그런데도 왠지 <지구영웅전설>이 먼저 쓴 작품 같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지구영웅전설>은 본래 800매였는데 300매 정도가 사라진 상태거든요. 각기 다른 원고를 여러 상에 응모했는데 그 와중에 모집 요강을 혼동한 거예요. (웃음) 800매를 썼는데 정작 내려고 가보니 500매라고 하기에 이야기 한층을 흔적만 남기고 아예 들어냈어요. 납득하기 어려우시겠지만, 그게 제 성격이에요. 병적으로 낙천적이죠.
-그럼 장·단편 몇편이나 그해에 응모를 하셨나요?
=그해 모집한 상은 거의 다 했죠. 신춘문예도 많이 냈는데 예심 통과한 작품이 거의 없어요. <삼미 슈퍼스타즈의…>와 <지구영웅전설> 사이에 쓴 장편도 있어요. 언젠가는 분량을 늘려서 다시 내려고 해요. 옴니버스 구성인데 세계화에 관한 이야기죠.
-<지구영웅전설>을 내놓고 접한 반응 중 예상치 못한 종류가 혹시 있었습니까?
=반응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안 써요. 저는 ‘선생님’이란 존재를 안 믿거든요.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아, 예”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요. 간섭받고 싶지 않아요. 부족한 것을 자꾸 얘기하면 부족한 걸 메우려고 자기도 모르게 노력하게 되잖아요. 그것이 맘에 안 들어요. 난 부족한 놈이니까 이대로 그냥 쓰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구영웅전설>은 의식적으로 노출을 많이 해보자는 작품이었다고 회고하셨습니다. 그것은 여러 번 거르지 않고 썼다는 뜻인가요?
=그냥 그러고 싶었고, 아무 걱정도 없었어요. 신인이잖아요. 신인이 썼는데 잘 써봤자 얼마나 잘 쓰겠어요. 사실은 지금도 아무 부담 없어요. 데뷔한 지 겨우 2년 됐잖아요. 신인인데 못하면 어때요? 못한다 그러면 “아, 예” 그러면 되죠. 작가가 별난 놈도 아니잖아요. 직장인들도 일하면서 깨지고 상사한테 욕도 먹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작가라고 만날 명작입니다라는 소리만 듣겠어요?
-데뷔 초에 상을 연거푸 두개 받으신 건 학교나 직장에 비교해도 드문 경험일 텐데요.
=하지만 당황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등단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기에 큰 감흥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글을 쓰려고 하는 지망생 중에 등단을 목적으로 쓰는 사람도 꽤 많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그게 가장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운전을 배우는 게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차를 몰고 어디 멋진 데를 드라이브하건 폭주를 하건 그러려고 운전을 배우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면허를 따는 것이 관건이 돼버린 거예요. 운전이야 무면허로 몇년 하다보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면허는 시험만 치면 저절로 생기잖아요. (웃음) 등단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귀찮으니까 그러면 한번 시험 쳐볼까, 하고 따는 거라고. 그렇게 운전해서 멋진 데를 다니다보면 바다가 나오고 그런 게 진짜 관건이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무려 18쇄를 찍었더군요. 열렬히 좋아한다고 밝히는 독자들도 자주 접하지 않습니까?
=아마 조금씩 찍어서 그럴 거예요. <카스테라>의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저는 누구나 다 스타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글이, 잘 쓴 글도 대단한 글도 아니고요. 누구를 좋아하는 거, 그런 일에 에너지 쏟지 말고 스스로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전, 정말 말도 안 되는 인간인데….
-하지만 작가님도 자신이 소중하시잖아요?
=저야 뭐 저를 그렇게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고 모두들 각자 그래야죠. 제가 한 얘기들, 인류 역사에서 다 나온 얘기들이에요. 그렇게 안 살기 때문에 계속 반복할 따름이죠.
그저 즉흥적으로 제가 좋을대로 쓰는 거예요
-2003년 나온 <지구영웅전설>과 <삼미슈퍼스타즈의…>의 공약수를 굳이 찾자면 슈퍼맨입니다. 그 이미지에 자꾸 생각이 미친 까닭이라도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하지만 그냥, 쓴 거예요. 가끔 “이 부분에서 의미하는 건 나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맞나요?”라는 독자 메일을 받아요. 그것도 평생 국어교육을 그렇게만 받고 자란 결과죠. 안타까워요. 사람들이 왜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를 불안해하고 점검해야 하는지. 심지어 소설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실은 작가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혀 몰라요.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런 위치에서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고 한 말이 참 좋아요.
-작가님 소설은 어찌 보면 할리우드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주인공이 겪는 투쟁의 내러티브가 선명하고 코미디가 들어 있고, 글쓰기의 ‘특수효과’가 화려하고, 작품 속의 허구적 세계를 이음매 없이 그려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마 있으면 <슈퍼맨 리턴즈>라는 영화를 <엑스맨> 시리즈의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해서 개봉하는데요. <지구영웅전설>을 DC 코믹스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쓰시면서 마블 코믹스의 영웅의 위치를 잡아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했죠. 엑스맨은 자체가 다 뮤턴트들이고 애국주의든 뭐든 미국 자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이잖아요. 이를테면 <지구영웅전설>에 등장한 헐크는 악이 없어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열심히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다가 갑자기 정부에서 애국을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러면 가서 싸우는데, 본인은 악이 없잖아요. 헐크는 그런 경우 같아요.
-그 경우는 능력, 힘이 곧 악인 셈이네요.
=힘, 그리고 폭력은 정말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아직도 인간은 아무리 많이 깨닫고 공부를 많이 해도 밀폐된 공간에서 더 힘센 인간한테 폭력을 당하면 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이 진짜 인간, 인류의 문제인 것 같아요. 실질적 해결책이 없어요. 결국 예수님도 그냥 죽여라, 죽어주마, (너털웃음) 그런 식으로 힘을 초월하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그렇게 죽이고 싶으면 죽이라고.
-<카스테라>에 실린 단편 제목들이 재미있습니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등등. <지구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그만, 토끼입니다.”하는 문장처럼, 부사와 명사를 느닷없이 연결시키는가하면, 부사를 문장 맨 앞으로 끌어당겨서 정서부터 전달하는 일도 잦은데요.
=제가 부사니 형용사니 문법적인 것을 잘 몰라서 그냥 쓰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단어를 배열할 때의 느낌이, 그 단편의 느낌과 잘 맞아서 선택할 뿐이죠.
-작가님의 문체를 김영하 작가님은 ‘신언문일치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삼미슈퍼스타즈…>에서 삼미의 어이없는 연패행진을 타령처럼 읊조린 부분을 보면 ‘어럽쇼’, ‘깜짝이야’ 같은 추임새를 넣은 것이 꼭 랩의 각운 같기도 하고요. 쓰면서 소리내어 읽어보시는지요?
=읽어보죠. 읽으면서 쓰고, 다 쓴 뒤 읽어보기도 하고. 쉼표도 그렇게 찍어요. 다른 사람이 읽어보는 경우도 있고요.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도 읽는 속도가 조금 다르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독특한 행 띄우기, 문단 나누기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문단 사이 암전이 필요하다거나 어디서 행을 갈아야 한다고 느낄 때의 감각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또, 내러티브를 잠시 중지하고 한바탕의 몽상을 서술하실 때도 있는데, 그런 막간극을 삽입해야겠다는 판단은 어떻게 내리세요?
=(난처한 듯) 그저 즉흥적으로 제가 좋을 대로 쓰는 거예요. 소설은 공부를 많이 할수록 쓰기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해요. 아는 게 많아지면 소설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생겨버리잖아요. 그러면서 “아, 이러면 안 돼”라는 제어가 작동하면서 쓰기 힘들어지겠죠. 그런데 저는 그것이 없으니까 편하게 써요.
살아간다는 게 불쌍해요, 많이 위로해주고 싶어요
-글쎄요, 배운 것이 없어서 그렇게 쓴다고 말씀하시지만, 어떻게 써야 한다는 지식이 걸림돌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지식을 넘어서는 충동이 없는 것이 문제 아닐까요?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석유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무슨 말이냐면 석유를 시추하는 기술과 장비가 다 있어서 땅을 팠는데 묻혀 있는 석유가 아주 조금인 경우도 있잖아요. 그럼 몇편 쓰고 고갈되는데 시추장비 있으면 뭐해요. 제일 중요한 건 매장돼 있는 석유의 양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뽑고 보자고 관을 꽂고 난 다음에 나오다 보면 펑펑 쏟을 수도 있고, 그럼 장비를 다시 준비하고 그러다보면 발전하겠죠. 그래서 저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생기는 것이 기뻐요.
-여러 작품에서 삼류 내지 하류의 ‘심리적 문신’을 묘사하셨습니다. 그것이 작가님 본인 혹은 우리에게 깊이 새겨진 속성 중의 하나라고 관찰하시나요?
=그렇기도 하고 전 제 자신도 불쌍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불쌍해요. 돌아보면 나 자신도 가엾은 인간이고 누구나 다 그래요. 그래서 하나 바람이 있다면 많이 위로해주고 싶어요.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어쨌거나 와서 같이 살고 있잖아요. 다른 재주를 지닌 양반들이 만든 옷을 내가 입고, 만들어준 전화기를 사용하듯이 저는 글쓰는 재주가 있으니 많이 위로해주고 가고 싶어요.
-<삼미 슈퍼스타즈의…>에서 대학 시절 부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대목에 나오는 장사에 뜻없는 술집에 대해 특별한 추억이나 애착이 있으신가요?
=사실 소설에서 아무 필요없는 부분이죠. (웃음) 그런 술집에 다닌 기억은 글쎄, 있었던 것도 같고 모르겠네요. 사람들 언뜻 되게 각박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런 틈새 없인 인간이 못 살죠. 밤에 차 없으면 빨간 불에 건너기도 하잖아요.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퀴즈를 듣는데, 왜 정답 쉽게 맞히라고 넣어주는 말도 안 되는 보기들 있잖아요? 그걸 정답이라고 꿋꿋이 외치는 사람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들으면서 그런 생각했어요. 살아 있기 때문에 저러는구나. 영혼이나 영체 같은 존재들은 그런 짓 안 할 거예요. (폭소) 이른바 삽질, 실수, 말도 안 되는 그런 일들 말이에요. <밀리언 달러 호텔>이라는 영화 시작 부분에도 자살하려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추락하면서 어이없는 장면들을 보잖아요. 샌드백 두드리는 애도 보이고, 죽는 자 시점에서 보면 어이없잫아요. 왜 그리 열심히 샌드백을 두드려요? (웃음) 다 살아 있기 때문에 하는 짓이죠. 다들 이유없이 불완전하고 이유없이 어이없고 그것에 믿음을 갖기도 하고. 제 소설도 그런 어이없는 짓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가님 소설이 본질적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 ‘소년’의 이야기라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재 중인 장편 <핑퐁>은, 실제로 주인공들이 소년, 중학생들인데다가 은유로서가 아닌 물리적인 싸움, 폭력, 죽음이 등장하니까 굉장히 무시무시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쓰고 있어요. 한회 남았는데 4회로 완결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닥 전작보다 처절할 것은 없어요. 진짜로 처절한 건, 어디선가 누군가 끔찍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가는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너털웃음) 폭력을 묘사한다고 몸이 더 힘들진 않아요. 체력은 좋으니까. 소처럼 그냥 써요.
-<핑퐁>은 군데군데 활자체 크기를 확 줄이는 시도를 하셨습니다. 서체만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잣말의 느낌입니까?
=나이든 분들은 읽기 힘들 정도의 글씨로 해달라고 했지요. (웃음) 읽히고 싶지 않다는 주인공의 느낌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들어 있어요.
-박상륭, 이외수 선생님을 좋아하시는 걸로 압니다. 두분의 어떤 점에 각각 깊은 인상을 받으시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 만화방에서 우연히 이외수 선생님이 쓴 <훈장>이란 작품을 읽고 어쨌거나 인간은 예술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마 저로선 어려서 세계명작문고 읽은 것 빼고 소설이나 글 읽기의 최초였던 거 같아요. 그 뒤 문창과 3학년 때인가 박상륭 선생님이 쓴 <뙤약볕>을 읽었어요. 아, 이런 분이 계신데 나 같은 놈이 글 써서 뭐하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외수 선생님을 개업의, 박상륭 선생님을 연구의에 비유하곤 하는데 두 작업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게 욕심이 있다면 그 두 가지 작업을 다 해보는 거예요. 지금까지도 이래저래 섞여 있긴 해요. <카스테라>는 어려워하는 분도 많거든요. 앞으로는 아주 쉬운 글을 쓰거나 혹은 아주 어려운 글을 쓸 거 같아요. 한 가지만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글도 발표했다가 쉬운 글도 발표했다가 할 거예요. 그러니까 미리 막 샀다가 후회 말고 정보를 구하셔서, 이번 것이 취향에 맞다 싶을 때 독자들이 읽으셨으면 해요. 괜히 읽고 이것도 문학이냐 욕하지 마시고…. (웃음)
글쓰기요? 게임 같다고 생각해요
-<지구영웅전설> 수상 뒤 하성란 작가와 인터뷰에서, 몸매를 고루 발달시키는 헬스가 아니라 특정 근육이 발달한 파이터가 되는 편을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발달시키고 싶은 글쓰기의 근육이 있나요?
=권투선수들을 앞에서 보면 팔이 되게 가늘어요. 대부분 그런 선수들은 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이에요. 한편 훅을 주로 사용하는 선수들은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발달해 있죠. 글쓰기의 성분과 재능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주무기가 있고 습관도 있죠. 그런데 한국식 교육은 이른바 전인교육을 목표로 항상 부족한 걸 지적하고 끌어올리려 하잖아요. 글 써서 발표하면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죠. 예를 들어 스트레이트를 잘 치는 선수인데 계속 당신은 훅이 부족하다, 이두박근이 너무 약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결국엔 혼자 거울 보면서 이두박근을 키우게 되는 거예요. 삼두박근이 약한 선수는 삼두박근을 키우고요. 그러고서 나오면 “이제 제대로 좀 모양새가 갖춰졌다”고 칭찬을 해주죠. 근데 그러면 실질적 펀치력은 약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처음엔 특징이 달랐던 두 선수가 거의 비슷한 몸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런 것이 한국의 교육 특성인 것 같아요. 계속 부족한 것 지적해서 결국 평준화해요. 그래서 저는 애당초 그건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로 여겨요. 그래, 나 부족한 거 많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도 있다는 거예요. 그걸로 더 충격을 주고 경기력을 높이는 방식을 찾겠다는 거죠.
-소설 이외에 각종 지면에 쓰신 칼럼과 에세이는 어떤 훈련인가요?
=그건 트레이닝이 아니라 생활하기 위해서 쓴 거예요.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는 것이 좋은 일이죠. 진짜 말도 안 되는 칼럼들이잖아요. 그 시각들 하며 참, (한숨) 말 그대로 오바작살이죠. 칼럼은 절대 책으로 안 묶어요. 오히려 에세이는 삶을 잘 사는 인간이 쓰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런 거 쓸 만한 인간이 아닌데 생활 때문에 썼어요. 근데 이제 운좋게 소설만 쓸 수 있는 여건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도 계속 칼럼 쓴다면 말 그대로 욕심이죠. 그동안 그런 것을 읽은 분들께 그저 죄송할 따름이죠. 하지만, 인간이 멋진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직장 생활하듯 작가 생활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규칙적으로 책상에 앉고 몸을 뒤틀지 않고 써나가는 편이신가요?
=산고는 있겠죠. 그러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다 힘들었으니까. 회사 다닐 때도 힘들었죠. 그런데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전 회사원 생활 해보고 습작할 때는 주부도 해보고 지금 작가를 하는데 제일 힘들었던 건 가사예요. 많이 배웠어요. 가끔 소설 쓰는 비결을 묻는 사람 있는데 그런 건 없고 그저 게임 같다고 생각해요. 글 쓰는 일은 제가 좋아하니까 즐겁지만, 또 어렵잖아요. 게임도 비슷해요. 하다보면 진짜 어렵고 엔딩을 못 볼 것 같은 게임이 있죠. 그때 엔딩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예요. ‘컨티뉴'를 누르는 것. 계속 컨티뉴해서 결국은 깨는 거죠. 그래서 소설도 계속 ‘컨티뉴‘를 눌러서 써요.
-작가님 메일 주소 앞자리가 ‘카즈야준’(kazuyajun)인데 무슨 사연이 있나요?
=(수줍어하며) 카즈야는 ‘철권’이라는 게임의 캐릭터예요. 그런데 제 아내가 게임 속에서 카즈야와 커플이 되는 캐릭터 준 카자마랑 많이 닮았거든요. 그래서 그녀와 사귀기 전에 저 혼자 잘되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지은 아이디예요.
-제도든 인물이든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라고 최근에 느낀 대상이 있습니까?
=헌터 S. 톰슨이라는 미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데요.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nalism: 취재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찰해 1인칭 시점으로 기사를 서술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창시한 분이라고 해요. 칼럼이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곤조를 부리신 모양이더군요. (웃음) 삶은 불우했을 거예요. 평생 그렇게 곤조를 부리셨는데 편안했을 리가 없죠. 아내와 전화통화하다가 권총자살을 했다던데 유해를 대포로 쏴서 지구 밖으로 날려 보내달라고 유언을 남겼대요. 시체만이라도 좀 지구를 떠나고 싶다고. 중요한 건 그 양반의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했는데(<라스베가스의 혐오와 공포>), 주연인 조니 뎁과 공연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분의 시신을 파내서 유언을 들어드린다고 대포로 쐈대요. 그 아름다운 스토리에 감동해서 울컥했어요. 아아, 최근에 접한 가장 멋진 장면이었어요.
머리가 희끗해지면 노인들끼리 모여 밴드를 할 거예요
-<핑퐁> 다음의 새 소설에 관해 “복종과 화합, 순응 그 자체랄 수 있는 소설”이라고도 하시고, 연애소설이라고도 하셨는데요.
=그건 되는 대로 얘기한 거예요. 연재 안 하고 바로 출간할 전작 장편을 쓰고 있어요. 중간에 단편도 쓰고 그러겠죠. 몇매 썼나 계산은 안 해요. 높은 곳을 지나갈 때 밑을 보지 말라고 하듯, 등산객이 해발 몇 미터인지 보면 더 힘들 듯, 진도 생각 안 하고 써요. <핑퐁>은 <창비>에서 내년 봄이나 초여름쯤에 낼 생각이고, 새 장편은 연말쯤 문예지와 무관한 출판사에서 나올 거예요.
-지난 일이지만 <대산문화>에 실린 선배 문인들의 충고에 대해 답한 글로 인해 한동안 떠들썩했습니다.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아요. 문단이 바뀌어야 한다고 불평하는 것도 짜증나요. 세상이 그렇다는 거 몰랐나.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글 쓰는 것도 짜증나요. 제가 그 글을 쓴 이유는 건드리지 말라는 거죠. 내버려두라고. 난 내 글 쓰는 건데 문단이랑 나랑 상관없잖아요.
-이른바 문단의 실체를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문단’이 어디 사무실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요. 주소라도 있나 했죠. 뭔지 모르겠어요. 아마 늘 심사 봐서 상 주고 그런 것 아닐까.
-나이든 본인의 모습을 상상하면, 책상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입니까?
=아뇨, 전 어려서부터 가진 꿈이 있어요. 머리가 희끗해질 때까지 글을 열심히 쓰고, 때가 되면 소설가라는 직함을 반납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노인들끼리 모여서 밴드를 하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 못하고 재능도 없지만, 그 정도 나이 되면 재능 없어도 다 용서될 나이잖아요. 전 사실 나이 들어 소설 한편 시 한편 안 쓰는데도 계속 소설가, 시인 그렇게 불리는 것도 맘에 안 들거든요. 그럼 전직 소설가라고 해야죠. 다른 사람들도 다들 직장 그만두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쫓겨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저는 살아가면서 심사하거나 한 자리하거나 그런 일은 절대 안 할 거예요. 머리 희어질 즈음까지 신인 소설가로 계속 살다가, 확 전직 소설가로 넘어갈 거예요. 그리고 밴드를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