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2월25일(일) 오후 1시50분
1950년대, 후기 장 르누아르 영화는 비교적 가볍다. 당시 르누아르 감독은 <황금마차>와 <프렌치 캉캉> <엘레나와 남자들> 등 사랑에 관한 코믹한 감각을 자랑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의 소동극은 세편의 영화에 공통적으로 스며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황금마차>에서 우리는, 어느 유쾌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남미의 어느 곳에서 총독이 주문한 황금마차가 등장하며 이탈리아의 유랑극단 여주인공 카밀라를 둘러싸고 세 남자가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식민지 총독 바이스로이는 일과 아내를 뒷전으로 미룬 채 유랑극단의 매력적인 여배우 카밀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이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었고, 권위의 상징인 황금마차를 카밀라에게 넘기려 한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투우사 라몬과 귀족 펠리페 또한 카밀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투까지 무릅쓴다. 카밀라는 황금마차를 가톨릭 주교에게 바친 뒤, 사랑의 미련을 마음에 묻은 채 중요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황금마차>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협력자는 비발디였다.” 르누아르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경쾌하게 흘러간다. 영화는 전형적인 희극을 펼쳐 보인다. 한 여성을 사이에 두고 식민지 총독과 귀족, 그리고 투우사가 달려드는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보노라면 이런 상황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부와 권력을 움켜쥔 남성들이 일견 초라한 여성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경쟁은 어쩐지 정신나간 듯 보이기도 하며 어색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 듯한 상황과 캐릭터들은 르누아르 감독이 의도적으로 작품에 끌어들인 것이다. 영화 속 과장되고 희극적 인물들에 대해 감독은 “어떤 예술가도 현실의 인물들을 아무런 변형없이 작품에 옮겨올 배짱은 없을 것이다”라며 설명한 적 있다. 여주인공 카밀라 역의 안나 마냐니는 <무방비도시>나 <맘마로마>에서의 열연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여배우다.
<황금마차>는 연극적인 영화다. 극의 흐름은 이탈리아 등 유럽 연극 전통에 기대고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연극적인 구석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주인공인 카밀라는 모든 사랑놀음을 뒤로한 채 관객을 향해 거대한 호소를 하기에 이른다. 인형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황금마차> 속 엔딩은 르누아르 감독이 영화 매체와 무대극의 전통, 그리고 회화의 이미지를 하나로 조합해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