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가자!” 아니 이게 웬 시대에 역행하는 소리냐고 묻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첨단을 걷고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0년간의 ‘디지털’ 작품세계를 스케치와 스토리보드, 콜라주, 입체모델 등의 ‘아날로그’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12월16일부터 2월6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의 주제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20년”으로, MoMA 역사상 처음으로 필름 상영이 아닌 오브젝트 중심의 ‘영화 전시회’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 86년 존 래세터가 창립한 픽사는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인크레더블> 등의 작품으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입지를 구축한 것이 사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픽사의 작품만을 전시하지만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MoMA의 액팅 큐레이터 스티븐 히긴스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로날드 매글리오지는 픽사 아카이브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등 픽사의 전적인 도움으로 전시회를 성사시켰다고.
주제별로 크게 3개 섹션으로 나뉘어진 이 전시회는 캐릭터와 내러티브, 세팅, 작품 속의 세계 등을 담은 500여개의 드로잉과 콜라주, 스토리보드, 3차원 모델 등 80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또 이 작품들의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과 단편 디지털 애니메이션 역시 전시회 벽면을 이용하거나 소형 스크린을 활용, 전시기간 중 계속 상영된다.
이중에는 <니모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갖가지 어류들의 페인팅으로 벽면을 채워 수족관을 연상시키는 작품에서부터 <인크레더블>의 의상 디자이너 에드나 캐릭터 모형의 변천과정 등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눈도 사로잡을 만한 작품들이 가득 차 있다. 어린이 관람객은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캐릭터의 입체모형 앞에서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성인 관람객은 전시품 옆에 깨알같이 써 있는 설명들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가며, 애니메이션에 익숙지 않은 친구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 등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의 다양한 모습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창의적 과정과 기술적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티스트의 연필 스케치를 통해 캐릭터의 탄생을 볼 수 있고, 이후 미완성의 애니메이션 그림에서, 여러 차례에 걸친 입체모형, 스토리보드, 그리고 디지털화까지 통로에서 통로로 이어진 3층의 전시장을 걸어가면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MoMA를 방문하지 못하는 관람객은 웹사이트(http://moma.org/exhibitions/2005/pixar.html)에서 기본적인 소개와 일부 전시작품의 사진 및 이를 설명하는 오디오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고, 전시회 카탈로그 구입도 가능하다. 인텔사와 포르셰 등이 협찬하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그러나 기존의 다른 전시회와는 달리 미술관 내에서 전시회 카탈로그를 제외한 픽사의 장난감이나 다른 관련 상품을 판매하지 않아 신선함(?)마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