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의 천사>는 재닛 프레임의 자서전 3부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출렁대다 서서히 분절되어 사라지면 우리는 한 여자의 영혼이 먼지가 되어 날갯짓하는 걸 본다. 1부 <이즈랜드로>. 훔친 돈으로 껌을 나눠줘야 친구 소리를 듣는 프레임은 왕따 소녀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프레임은 사범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릴 적 쓴 시를 불태운다. 2부 <내 책상 위의 천사>. 타인과 외부세계로부터 점점 소외되던 프레임은 정신병원에서의 8년 동안 정신분열증 치료라는 명분 아래 전기충격 요법을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 그녀의 글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그녀는 첫 소설이 출판되기 전 유럽으로 떠난다. 3부 <거울 도시로부터의 결구>. 스페인에서의 연애도 잠시, 다시 병원을 찾은 그녀는 과거 진단이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프레임은 가족들이 죽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타자기에선 풀, 바람, 전나무, 바다가 나지막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나씩 찍힌다. 새소리에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트위스트를 춘다. 그녀는 이제 자연과 함께 속삭인다.
1980년대의 제인 캠피온은 낯선 땅 뉴질랜드 출신 여성감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신기할 만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진짜 여자가 진짜 여자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는 데 있다. 그녀는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와 욕망과 슬픔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모든 이빨이 썩어가는 육체적 고통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적 혼란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캠피온이 계속해서 다루는 주제를 대표한다. 상처와 고통을 아는 자만이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재닛 프레임의 이야기는 거기에 한치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우울함으로 가득한 작품이 아니어서, 그녀를 위해 준비된 위안이며 정신의 그믐을 지나 새벽을 맞이한 자를 위한 찬가이자 상처입은 사람에게 바치는 애정어린 입맞춤이 된다.
초기에 나온 호주판 DVD의 화질은 1.33:1 스탠더드 화면비율에다 조악했으나, 영국·프랑스·미국판(감독이 인정한 판본)은 아나모픽 1.77:1 비율에 맞춰져 있다. 호주·영국·프랑스판은 DD 2.0 사운드를, 미국판은 DD 5.1 사운드를 담고 있으며, 자막은 미국판에만 지원된다. 미국판은 NTSC 판본으로서 재생시간을 제대로 살린 게 장점이며, 다른 판본에도 수록된 메이킹필름, 6개의 삭제 장면, 예고편 등의 부록 외에 음성해설과 원작자의 라디오 인터뷰를 수록해 눈길을 끈다. 단, 캠피온을 유명하게 만든 <필> <열정 없는 순간들> 등의 중·단편과 장편 데뷔작 <스위티>를 보고 싶다면 프랑스의 박스판이 좋은 선택이다.